OO 이 있는 가족 (The Heritage of Faith)
성경본문: 예레미야 17장 7~8절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한번은 작은 아버님이 어린 저를 부르셨습니다. 두툼한 누런 족보 2권을 가져와서는 제 부모님의 이름과 제 이름이 적힌 페이지를 보여주시면서 너는 이러이러한 가문의 몇 대
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족보라는 것이 참 신기했습니다. 뿌리를 안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은 아버님께서 조상 중에 중요 관직에 있었던 몇몇 중요한 분들을 일러 주시면서 그들의 행적에 대해 말씀해 주실 때는 자연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해방 이후에는 별로 특이점이 없어 보였습니다. 사람들의 이름과 자녀들의 이름이 계속해서 나올 뿐 그저 평범한 가문일 뿐이었습니다. 대부분 농사를 짓고 살았고, 어쩌다 공무원이나 소규모 사업을 하는 사람이 전부였습니다. 자라면서 저는 그 족보들을 마음 속에 되새기면서 나와 우리 가문은 어떤 가문이 될까 하고 많이 기도해 왔습니다. 그저 혈통에 의해 이름만 올리는 그런 가문이 아니라 무언가를 남길 수 있는 그런 특별한 가문이 되기를 위해 기도해 왔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현재의 삶에 여건에 힘들어 가문은
고사하고 현재의 가족 챙기기도 힘들다고 생각하고 계시지는 않는지요? 혹은 좋은 가문이야 늘 생각하지만, 이것이 어디 쉬운 일이냐고 반문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날처럼 부와 권력이 편중되고 세습되는 상황에서 좋은 환경과 좋은 여건을 만들 수 없는 현실 속에 더더욱 좋은 가문을 이루기가 힘들다고 고민하고는 있지는 않으신지요? 그러나 성경과 역사는 결코 그렇지 않다라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저희가 살고 있는 미국에서 최고의 가문을 뽑으라면 각 분야 별로 많이 나옵니다. 정치적으로는 최근에 케네디 가문과 부시 가문 정도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대통령을 역임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들은 전반적으로 정치적인 요직에 많이 포진되어서 지금도 영향력을 펼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경제적으로는 록펠러, 맬런, 듀폰, 핍스 가문들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의 재산과 영향력은 오늘날의 빌 게이츠나 얼마 전까지 생존했던 스티브 잡스를 능가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외에 한 가문을 더 들고자 합니다. 앞서 언급했던 가문들이 대부분 한 분야에 국한된 영향력을 펼쳤다면 이 가문은 그의 사후 200년 동안에 미국 정신의 기틀이 되었습니다. 바로 부흥회를 통해 많은 분들이 들어보셨을 수도 있을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의 가문입니다. 매세추세츠 서쪽 작은 마을인 Northampton에서 미국의 부흥 운동을 주도했으며, 후일에 프린스톤 대학교의 전신인 뉴저지 칼리지의 총장을 맡기도 한 그의 집안은 12명의 자녀와 그들의 4-5대에 걸친 후손들을 통해 부통령이 하나, 13명의 대학 총장, 3명의 주지사, 3명의 시장, 149명의 변호사,48명의 판검사, 116명의 목사, 75명의 사업가, 25명의 발명가, 66명의 교수, 82명의 차관급 공무원, 68명의 의사가 배출되었습니다. 참 대단하지요? 비록 그들은 작은 오두막 집에 살았지만, 비록 그들은 초라한 부부로 이름 없는 가문의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자녀들과 자손들은 많은 사람이 부러워할 정도로 휼륭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결과는 조나단 에드워즈와 그의 아내인 사라의 믿음의 결실이라는 사실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충분히 이런 훌륭한 가문이 될 수 있습니다. 꼭 정치나 경제적인 부분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인물이 아닐지라도 전세계의 역사와 정신적 가치를 드높일 귀한 인재들이 여러분을 통해서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사실 각자의 가족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가족에게 독특하게 흐르는 혈통적 DNA가 있습니다. 사상과 문장을 잘하는 문사의 기질이 있는 가족이 있는가 하면, 아름다운 목소리와 창조적인 예술성을 가지고 있는 가족도 있습니다. 또 어떤 가족은 운동 신경이 뛰어나 스포츠에 두각을 드러내는 가족이 있습니다. 이렇듯 좋은 DNA 뿐만 아니라 안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DNA가 있는 가족도 있습니다. 할아버지부터 시작되어 술에 중독되어 사는 알코홀릭(alcoholic)도 한가지 예입니다. 도박에 중독되어 전 재산을 탕진하는 것도 나쁜 DNA입니다. 첩을 얻거나 바람을 피우는 것도 역시 핏속에 흐르는 독특한 DNA입니다. 우울증이 있거나 자살 증후군이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고, 우리가 병원을 방문해서 병력을 기록할 때, 조상 대대로 고혈압이나 심장 질환, 혹은 치매도 그런 혈통적 DNA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좋은 DNA이건 나쁜 DNA이건 운명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좋은 DNA가 몸 속에 흘러 도움이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펼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그러나 나쁜 DNA에 대해서 운명이라고 그것에 순복한다면 우리는 결코 좋은 가문을 이룰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설교 제목을 “OO이 있는 가족”이라고 해 보았습니다. 우리 가족에 무엇이 있으면 가장 좋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이 무엇의 자리에 사랑을 써 넣기도 하고, 돈을 써 넣기도 하고, 건강을 써 놓기도 하고, 화목을 써 놓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작 여러분이 여러분
가족과 자녀들에게 최고의 유산을 남기시려거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을 자세히 살펴 보았으면 합니다.
먼저 이 무엇의 자리에 없어야 할 것들입니다. 우리가 읽은 성경 본문 앞 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예레미야 17장 5절) 말씀을 읽으면서 ‘저주’라는 단어가 상당히 강한 반감으로 다가오기는 하지만 “사람을 믿는다”라는 말과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는다”, 그리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이라는 말을 주목해 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앞의 두 말은 우리 인간들이 가장 흔하게 행하는 형태입니다. 우리는 참 사람들을 의지합니다. 그래서 정이 깊은 가족이라든지, 살가운 가족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 여러 복잡한 인간관계를 맺어갑니다. 그것이 혈연일수도 있고,학연과 지연일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개인의 이익에 따라 정치 경제적으로 여러 관계들을 맺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살갑고 정이 가기도 하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인간관계는 완벽하지가
못하다라는 말입니다. 정말 친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해 서로가 원수가 되기도 하고, 아주 자그마한 일에 오해를 불러 일으켜서 싸움이 나 서로가 등을 돌리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 인간관계를 잘 하지 못해 심히 외로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영원하지 못한 불완전한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힘들게 합니다. 물론 믿는 사람이기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랴?”라는 속담 보다 발등을 찍혀 가면서 믿고 신뢰하며 살아가는 것이 저희들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이런 불완정성을 보완하기 위해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서 ‘육신’이라고 하는 것은 꼭 신체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질과 지식 등 세상에서 우리의 안전을 위해 담보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의지하는 사람과 안전을 위해 쌓고 있는 육신이 우리의 마음을 여호와에게서 떠나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서 붙잡고 있는 것들이 강할수록 더욱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것을 저주라고
말하고 마치 건조한 사막에 사는 떨기나무 같다고 했습니다. 좋은 것을 알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언젠가는 사그라지고 멸망할 결과를 가져다 주는 그런 사막의 메마른 나무가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이런 것들을 남겨 주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언젠가 다 없어지고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남겨주어야 합니까? 우리는 7절에서 읽은 것처럼, 여호와를 의지하고 의뢰하는 것을 남겨주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믿음입니다. 사실 오늘 설교 제목을 보면서 제 나름대로 몇 가지를 그 빈 공간에 집어 넣어보았습니다. 진리의 말씀이 있는 가족, 믿음의 도전이 있는 가족, 사랑과 용서가 있는 가족… 여러 좋은 말씀은 그곳에 다 집어 넣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그 자리에 하나님 한 분 만을 집어넣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이 있는 가족.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사는 신앙이 최고의 답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7절) 여기서 의지(trust)하고 의뢰한다(confidence)는 말은 그냥 단순히 믿는다(believe)라는 말보다 더 강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의지와 육체의 모든 것을 철저히 내어 맡기는 복종(surrender)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 그리고 온 우주와 역사의 주관자 이신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 가족의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그 다음 8절에서 아주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이 말씀은 시편 1편 3절 말씀과 동일한 말씀입니다. 두 말씀에서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을 복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 비교하였습니다. 나무는 물과 햇빛이 절대 필수적입니다. 만일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하기만 한다면, 이것은 바로 뿌리를 강변에 뻗치는 행위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필요조건이 바로 제공됩니다. 물이 끊임없이 제공된다는 말 가운데는 우리의 예배를 통해, 우리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형성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합니다. 그리고 그 관계를 통해 우리는 우리 삶에 일어나는 구원에 대한 모든 조건과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지혜와 어그러지고 부서진 모든 문제에서 우리가 회복되고 치유됨을 공급받는 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마음에 모든 것이 주어지니 그 다음은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잎이 푸르른 것뿐만 아니라 결실이 그치지 아니합니다. 즉 우리 가족의 당대뿐만 아니라 믿음의 후손들에게도 귀한 열매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 열매는 우리의 기도와 상상 이상입니다. 만일 조나단 에드워즈 부부가 살아서 그 결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면 그들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그들의 후손은 그들이 꿈꿨던 것보다 더 큰 축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사실은 오늘 본문 말씀을 더욱 확증하는 증거가 되는 셈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와 후손들에게 무엇을 남겨 주시려고 하십니까? 아직도 현실의 상황과 여건을 원망하십니까? 우리 하나님은 모든 장벽을 뛰어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녀와 후손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물려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다함이 없는 물댄 동산 같은 것입니다. 당장 보이지 않지만, 여러분의 믿음의 기도를 통해 끊임없이 역사하실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와 섭리를 물려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여러분 자녀들과 함께 하시기만 한다면 그 다음은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늘 여호와의 말씀을 묵상하며, 믿음의 기도를 통해 자녀들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저와 여러분의 가족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몇 백 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세계와 역사 속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정말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귀한 믿음의 가문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성경본문: 예레미야 17장 7~8절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한번은 작은 아버님이 어린 저를 부르셨습니다. 두툼한 누런 족보 2권을 가져와서는 제 부모님의 이름과 제 이름이 적힌 페이지를 보여주시면서 너는 이러이러한 가문의 몇 대
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족보라는 것이 참 신기했습니다. 뿌리를 안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은 아버님께서 조상 중에 중요 관직에 있었던 몇몇 중요한 분들을 일러 주시면서 그들의 행적에 대해 말씀해 주실 때는 자연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해방 이후에는 별로 특이점이 없어 보였습니다. 사람들의 이름과 자녀들의 이름이 계속해서 나올 뿐 그저 평범한 가문일 뿐이었습니다. 대부분 농사를 짓고 살았고, 어쩌다 공무원이나 소규모 사업을 하는 사람이 전부였습니다. 자라면서 저는 그 족보들을 마음 속에 되새기면서 나와 우리 가문은 어떤 가문이 될까 하고 많이 기도해 왔습니다. 그저 혈통에 의해 이름만 올리는 그런 가문이 아니라 무언가를 남길 수 있는 그런 특별한 가문이 되기를 위해 기도해 왔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현재의 삶에 여건에 힘들어 가문은
고사하고 현재의 가족 챙기기도 힘들다고 생각하고 계시지는 않는지요? 혹은 좋은 가문이야 늘 생각하지만, 이것이 어디 쉬운 일이냐고 반문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날처럼 부와 권력이 편중되고 세습되는 상황에서 좋은 환경과 좋은 여건을 만들 수 없는 현실 속에 더더욱 좋은 가문을 이루기가 힘들다고 고민하고는 있지는 않으신지요? 그러나 성경과 역사는 결코 그렇지 않다라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저희가 살고 있는 미국에서 최고의 가문을 뽑으라면 각 분야 별로 많이 나옵니다. 정치적으로는 최근에 케네디 가문과 부시 가문 정도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대통령을 역임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들은 전반적으로 정치적인 요직에 많이 포진되어서 지금도 영향력을 펼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경제적으로는 록펠러, 맬런, 듀폰, 핍스 가문들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의 재산과 영향력은 오늘날의 빌 게이츠나 얼마 전까지 생존했던 스티브 잡스를 능가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외에 한 가문을 더 들고자 합니다. 앞서 언급했던 가문들이 대부분 한 분야에 국한된 영향력을 펼쳤다면 이 가문은 그의 사후 200년 동안에 미국 정신의 기틀이 되었습니다. 바로 부흥회를 통해 많은 분들이 들어보셨을 수도 있을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의 가문입니다. 매세추세츠 서쪽 작은 마을인 Northampton에서 미국의 부흥 운동을 주도했으며, 후일에 프린스톤 대학교의 전신인 뉴저지 칼리지의 총장을 맡기도 한 그의 집안은 12명의 자녀와 그들의 4-5대에 걸친 후손들을 통해 부통령이 하나, 13명의 대학 총장, 3명의 주지사, 3명의 시장, 149명의 변호사,48명의 판검사, 116명의 목사, 75명의 사업가, 25명의 발명가, 66명의 교수, 82명의 차관급 공무원, 68명의 의사가 배출되었습니다. 참 대단하지요? 비록 그들은 작은 오두막 집에 살았지만, 비록 그들은 초라한 부부로 이름 없는 가문의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자녀들과 자손들은 많은 사람이 부러워할 정도로 휼륭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결과는 조나단 에드워즈와 그의 아내인 사라의 믿음의 결실이라는 사실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충분히 이런 훌륭한 가문이 될 수 있습니다. 꼭 정치나 경제적인 부분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인물이 아닐지라도 전세계의 역사와 정신적 가치를 드높일 귀한 인재들이 여러분을 통해서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사실 각자의 가족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가족에게 독특하게 흐르는 혈통적 DNA가 있습니다. 사상과 문장을 잘하는 문사의 기질이 있는 가족이 있는가 하면, 아름다운 목소리와 창조적인 예술성을 가지고 있는 가족도 있습니다. 또 어떤 가족은 운동 신경이 뛰어나 스포츠에 두각을 드러내는 가족이 있습니다. 이렇듯 좋은 DNA 뿐만 아니라 안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DNA가 있는 가족도 있습니다. 할아버지부터 시작되어 술에 중독되어 사는 알코홀릭(alcoholic)도 한가지 예입니다. 도박에 중독되어 전 재산을 탕진하는 것도 나쁜 DNA입니다. 첩을 얻거나 바람을 피우는 것도 역시 핏속에 흐르는 독특한 DNA입니다. 우울증이 있거나 자살 증후군이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고, 우리가 병원을 방문해서 병력을 기록할 때, 조상 대대로 고혈압이나 심장 질환, 혹은 치매도 그런 혈통적 DNA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좋은 DNA이건 나쁜 DNA이건 운명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좋은 DNA가 몸 속에 흘러 도움이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펼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그러나 나쁜 DNA에 대해서 운명이라고 그것에 순복한다면 우리는 결코 좋은 가문을 이룰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설교 제목을 “OO이 있는 가족”이라고 해 보았습니다. 우리 가족에 무엇이 있으면 가장 좋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이 무엇의 자리에 사랑을 써 넣기도 하고, 돈을 써 넣기도 하고, 건강을 써 놓기도 하고, 화목을 써 놓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작 여러분이 여러분
가족과 자녀들에게 최고의 유산을 남기시려거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을 자세히 살펴 보았으면 합니다.
먼저 이 무엇의 자리에 없어야 할 것들입니다. 우리가 읽은 성경 본문 앞 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예레미야 17장 5절) 말씀을 읽으면서 ‘저주’라는 단어가 상당히 강한 반감으로 다가오기는 하지만 “사람을 믿는다”라는 말과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는다”, 그리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이라는 말을 주목해 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앞의 두 말은 우리 인간들이 가장 흔하게 행하는 형태입니다. 우리는 참 사람들을 의지합니다. 그래서 정이 깊은 가족이라든지, 살가운 가족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 여러 복잡한 인간관계를 맺어갑니다. 그것이 혈연일수도 있고,학연과 지연일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개인의 이익에 따라 정치 경제적으로 여러 관계들을 맺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살갑고 정이 가기도 하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인간관계는 완벽하지가
못하다라는 말입니다. 정말 친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해 서로가 원수가 되기도 하고, 아주 자그마한 일에 오해를 불러 일으켜서 싸움이 나 서로가 등을 돌리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 인간관계를 잘 하지 못해 심히 외로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영원하지 못한 불완전한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우리의 마음을 흔들고 힘들게 합니다. 물론 믿는 사람이기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랴?”라는 속담 보다 발등을 찍혀 가면서 믿고 신뢰하며 살아가는 것이 저희들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이런 불완정성을 보완하기 위해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서 ‘육신’이라고 하는 것은 꼭 신체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질과 지식 등 세상에서 우리의 안전을 위해 담보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의지하는 사람과 안전을 위해 쌓고 있는 육신이 우리의 마음을 여호와에게서 떠나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서 붙잡고 있는 것들이 강할수록 더욱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것을 저주라고
말하고 마치 건조한 사막에 사는 떨기나무 같다고 했습니다. 좋은 것을 알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언젠가는 사그라지고 멸망할 결과를 가져다 주는 그런 사막의 메마른 나무가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이런 것들을 남겨 주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언젠가 다 없어지고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남겨주어야 합니까? 우리는 7절에서 읽은 것처럼, 여호와를 의지하고 의뢰하는 것을 남겨주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믿음입니다. 사실 오늘 설교 제목을 보면서 제 나름대로 몇 가지를 그 빈 공간에 집어 넣어보았습니다. 진리의 말씀이 있는 가족, 믿음의 도전이 있는 가족, 사랑과 용서가 있는 가족… 여러 좋은 말씀은 그곳에 다 집어 넣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그 자리에 하나님 한 분 만을 집어넣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이 있는 가족.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사는 신앙이 최고의 답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7절) 여기서 의지(trust)하고 의뢰한다(confidence)는 말은 그냥 단순히 믿는다(believe)라는 말보다 더 강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의지와 육체의 모든 것을 철저히 내어 맡기는 복종(surrender)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 그리고 온 우주와 역사의 주관자 이신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 가족의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그 다음 8절에서 아주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이 말씀은 시편 1편 3절 말씀과 동일한 말씀입니다. 두 말씀에서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을 복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 비교하였습니다. 나무는 물과 햇빛이 절대 필수적입니다. 만일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하기만 한다면, 이것은 바로 뿌리를 강변에 뻗치는 행위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필요조건이 바로 제공됩니다. 물이 끊임없이 제공된다는 말 가운데는 우리의 예배를 통해, 우리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형성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합니다. 그리고 그 관계를 통해 우리는 우리 삶에 일어나는 구원에 대한 모든 조건과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지혜와 어그러지고 부서진 모든 문제에서 우리가 회복되고 치유됨을 공급받는 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마음에 모든 것이 주어지니 그 다음은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잎이 푸르른 것뿐만 아니라 결실이 그치지 아니합니다. 즉 우리 가족의 당대뿐만 아니라 믿음의 후손들에게도 귀한 열매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 열매는 우리의 기도와 상상 이상입니다. 만일 조나단 에드워즈 부부가 살아서 그 결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면 그들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그들의 후손은 그들이 꿈꿨던 것보다 더 큰 축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사실은 오늘 본문 말씀을 더욱 확증하는 증거가 되는 셈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와 후손들에게 무엇을 남겨 주시려고 하십니까? 아직도 현실의 상황과 여건을 원망하십니까? 우리 하나님은 모든 장벽을 뛰어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녀와 후손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물려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다함이 없는 물댄 동산 같은 것입니다. 당장 보이지 않지만, 여러분의 믿음의 기도를 통해 끊임없이 역사하실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와 섭리를 물려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여러분 자녀들과 함께 하시기만 한다면 그 다음은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늘 여호와의 말씀을 묵상하며, 믿음의 기도를 통해 자녀들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저와 여러분의 가족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몇 백 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세계와 역사 속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정말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귀한 믿음의 가문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