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부 헌신예배_설교:김성준 전도사)
Here for a Reason
예레미야 1:4-10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 지니라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여호와께서 그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를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9월의 마지막 주일에 이렇게 다음세대를 위한 헌신예배를 주님께 올려 드리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온 교회가 공동체와 이 도시, 그리고 열방의 미래를 생각하며 학생들을 축복하는 예배를 드리는 이 자리에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 하신 줄로 믿습니다. 특히 제 개인적으로 이 예배 안에서 감사한 것은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너무 많은 일들을 수고해 주어서 더 아름답게 예배를 주님께 올려드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모두가 열정적으로 참여해 주고, 귀한 찬양을 올려 드리고, 말씀을 낭독하고, 심지어는 제가 오늘 전할 말씀까지도 정해 주어서 참 제가 할 일이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원례 오늘 전하고자 하는 말씀은 방금 들은 예레미야의 말씀과 다른 말씀이었지만, 아이들이 이 말씀과 오늘 예배의 테마를 정하는 모습을 보며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오늘의 주제에 합당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강한 것을 느껴 적잖이 놀랐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묵상하는 데에 깊은 이유가 있는 것을 믿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선지자 예레미야를 부르시고, 열방의 선
지자로 세우시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때는 기원전 5세기로 지금부터 약 2600 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은 이미 오래 전에 둘로 쪼개어져 현재 우리나라의 남북한과 같은 분단국가로 지내 왔으며, 북쪽의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해 버린 상황이었습니다. 역사학자들과 그 시대의 주변 국가에 살던 사람이라면 이스라엘이 아시리아보다 약한 국가였기 때문에 멸망 했을 것이라고 생각 했겠지만, 사실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된 진짜 이유는 그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오랜 세월 동안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 보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더 두려워하며 살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 세대를 거쳐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은 그들이 다시 하나님께로돌아오기를 권하였지만 결국은 하나님이 그들을 치실 때 까지 뉘우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찾으시는 오늘 본문의 말씀은 남쪽 유다 백성들이 얼마전에 멸망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그대로 반복하며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시기에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동족이었던 이스라엘이 어떤 이유, 어떤 과정으로 멸망하게 되었는지를 보고 나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신 하나님이 유다 백성들에게 바빌론이라는 나라로 그들을 치시기 전에 마지막 경고를 하시려고 예레미야를 부르셨습니다. 아마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실 때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이웃사람들, 주변 지인들, 그리고 온 나라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고 자신의 생각대로 하려는 사람들인데, 이들에게 하나님의 엄중한 메시지를 전하려니 막막한 느낌이 들었을 것입니다.
요즘 보스톤과 미국,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대를 둘러보면 바로 이 때의 유대 나라와 비슷한 면이 아주 많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미국에서 고등학교 공부를 하며 미국의 역사를 공부할 때 이 도시가 어떤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배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2년 전에 이곳으로 올 때, 아마 그런 마음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그 정신의 흔적들이라도 찾아볼 수 있을거라는 기대를했었습니다. 하지만 실재 보스톤에 와 보니, 여러 가지 면에서 예레미야 선지자의 유대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을 느낀 것 같습니다. 이런 도시의 상황 속에서 사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부르신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오늘 본문의 5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부르시는 방법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 분의 큰일을 맡기실 사람을 찾으시면서, 예레미야의 이력서를 받으신 것도 아니고, 대학교의 Transcript를 받으시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예레미야가 태어나기도 전, 하나님이 그를 만드시기도 전부터 그를 아시고, 태어나기 전부터 구별하시고, 그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우셨다고 하십니다. 결국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기 전 까지 어떤 삶을 살아 왔고, 어떤 능력이나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그에게 일을맡기시는 것이 아니고, 예레미야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를 아시고, 그가 태어나는 장소와 시간, 그리고 그 곳에서 하게 될 일들을 이미 다 계획하셨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유스 그룹의 친구들이 왜 자신이 이 곳, 보스턴/뉴턴 지역에 와서 살게 되었는지 이해하기 힘들어서 고민 한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곳에서 사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이곳, 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사는 삶이 힘들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15살 때, 제 의지와는 별로 상관없이 부모님들의 결정으로 혼자 미국에 온 뒤로 내가 여기 와서 무얼 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말도 제대로 못 알아듣고, 괜히 다른 친구들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낄 때 마다 그 생각은 더 깊게 저를 고민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를통해 하나님이 각 사람들을 지으시고, 구별하시고, 세우시는 방법을 보니, 어느 순간하나, 어느 장소 하나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계획 없이 가게 되는 곳은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그를 특별한 하나님의 장소로 옮기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도 아버지의 집을 떠나 이집트로 가게 하셨습니다; 모세를 부르실 때에도 그를 특별한 장소로 인도셨습니다; 이집트 땅에서 종처럼 살던 이스라엘도 하나님은 가나안으로 불러 내셨습니다;
다윗왕도 하나님의 뜻에 의해 왕이 되기 전 까지 수많은 곳을 떠돌아 다녔습니다; 구
약과 신약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하심에 따라 특별한 때에
특별한 장소로 부르심을 받아 가게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도 하늘 집을 떠나 하나님의 뜻을 위해 이 땅으로 보내어 진 것
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우리 학생부 친구들 모두가 이 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삶
을 살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엄마 아버지가 이 곳으로 왔기 때문이 아니고, 그래서
여러분이 어쩔 수 없이 따라왔기 때문이 아닌,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이곳에 있기로 계
획하셨기 때문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 곳에 보내어진 하나님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첫 번째로는 바로 여러분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예레미야는 “하나님, 저는 어린 아이입니다.” 라고 말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이렇게 말 하는 것은 정말 예레미야가 자기 자신의 나이
가 너무 어린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이 맡기시는 일을 하기에 자신
의 능력이 너무 부족하고 연약하기 때문에, 특히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하나
님의 말씀을 전할 때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막막함을 이야기 한다고 보
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방식은 항상 어려운 일을 시키시더라도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고, 담대히 행할 수 있도록 감동을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렇게 헌신 예배를 준비 하면서, 아직 직접 예배를 준비해 본 경험도 많지 않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어색하기도 하지만, 이 기회를 통해 즐거워하며 열정적으로 준비하는 것을 통해 어느 정도 성장이 있었을 줄로 믿습니다.
이러한 여러 경험과 기회들을 통해 하나님은 그 분이 부르신 백성들을 성장 시키시며, 이전에 할 수 없던 일들을 할 수 있는 능력들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특별히 여러분이 학생으로 있는 이 시기에 학교나 세상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만큼, 하나님과의 관계 가운데 더 깊은 성장 있길 바랍니다.
두 번째는 여러분을 특별한 하나님의 목적으로 세우시는 데에 있습니다. 어떤 대학을 가고, 무슨 직장을 가지고, 얼마의 급여를 받으며, 어느 정도의 풍요로움을 누리게 되는지에 대한 문제는 참 중요한 고민들입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것을 꿈꾸며, 계획하고, 준비하는데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기독교인이든,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든, 아니면 신을 믿지 않든 상관없이 모두가 다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우리 크리스천은 모두가 다 고민하는 “더 나은 삶”의 문제 위에 더 큰 목적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어떤 목적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귀한 이유 때문에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은마치 밤이 되면 캄캄하게 어두워지는 길목에 환한 가로등을 놓는 것과 같습니다. 한치앞도 보지 못해 더듬거리고 불안해하는 세상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과 사랑에 빠진 한사람은 밝은 빛과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우리를 세상 가운데 세우시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우리를 보고 우리의 기쁨에 동참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은 우리를 더 살기 좋은 환경으로 인도해 주시는 분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종종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을 사람의 간증을 통해 듣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편안하게 느낄 그 곳 보다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써 더 밝게 빛날 그 곳으로 인도하시며, 우리가 즐거워 할 그 곳으로 인도하시기 보다는, 어떤 곳이던지 우리가 선 그 곳에서 기뻐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의 놀라운 능력 중 하나입니다.
오늘 성령님께서 우리가 이 곳에 선 이유를 필그림 교회 모든 성도와 함께 나누길 원하신다고 믿습니다. 이 귀한 중고등부 헌신예배를 통해 이 자리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이 곳에 보내신 이유와, 이 자리에서 우리를 통해 하시는 일들을 배우며, 그 부르심에 기쁨으로 응답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Here for a Reason
예레미야 1:4-10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 지니라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여호와께서 그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를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9월의 마지막 주일에 이렇게 다음세대를 위한 헌신예배를 주님께 올려 드리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온 교회가 공동체와 이 도시, 그리고 열방의 미래를 생각하며 학생들을 축복하는 예배를 드리는 이 자리에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 하신 줄로 믿습니다. 특히 제 개인적으로 이 예배 안에서 감사한 것은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너무 많은 일들을 수고해 주어서 더 아름답게 예배를 주님께 올려드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모두가 열정적으로 참여해 주고, 귀한 찬양을 올려 드리고, 말씀을 낭독하고, 심지어는 제가 오늘 전할 말씀까지도 정해 주어서 참 제가 할 일이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원례 오늘 전하고자 하는 말씀은 방금 들은 예레미야의 말씀과 다른 말씀이었지만, 아이들이 이 말씀과 오늘 예배의 테마를 정하는 모습을 보며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오늘의 주제에 합당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강한 것을 느껴 적잖이 놀랐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묵상하는 데에 깊은 이유가 있는 것을 믿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선지자 예레미야를 부르시고, 열방의 선
지자로 세우시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때는 기원전 5세기로 지금부터 약 2600 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은 이미 오래 전에 둘로 쪼개어져 현재 우리나라의 남북한과 같은 분단국가로 지내 왔으며, 북쪽의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해 버린 상황이었습니다. 역사학자들과 그 시대의 주변 국가에 살던 사람이라면 이스라엘이 아시리아보다 약한 국가였기 때문에 멸망 했을 것이라고 생각 했겠지만, 사실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된 진짜 이유는 그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오랜 세월 동안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 보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더 두려워하며 살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 세대를 거쳐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은 그들이 다시 하나님께로돌아오기를 권하였지만 결국은 하나님이 그들을 치실 때 까지 뉘우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찾으시는 오늘 본문의 말씀은 남쪽 유다 백성들이 얼마전에 멸망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그대로 반복하며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시기에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동족이었던 이스라엘이 어떤 이유, 어떤 과정으로 멸망하게 되었는지를 보고 나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신 하나님이 유다 백성들에게 바빌론이라는 나라로 그들을 치시기 전에 마지막 경고를 하시려고 예레미야를 부르셨습니다. 아마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실 때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이웃사람들, 주변 지인들, 그리고 온 나라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고 자신의 생각대로 하려는 사람들인데, 이들에게 하나님의 엄중한 메시지를 전하려니 막막한 느낌이 들었을 것입니다.
요즘 보스톤과 미국,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대를 둘러보면 바로 이 때의 유대 나라와 비슷한 면이 아주 많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미국에서 고등학교 공부를 하며 미국의 역사를 공부할 때 이 도시가 어떤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배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2년 전에 이곳으로 올 때, 아마 그런 마음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그 정신의 흔적들이라도 찾아볼 수 있을거라는 기대를했었습니다. 하지만 실재 보스톤에 와 보니, 여러 가지 면에서 예레미야 선지자의 유대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을 느낀 것 같습니다. 이런 도시의 상황 속에서 사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부르신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오늘 본문의 5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부르시는 방법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 분의 큰일을 맡기실 사람을 찾으시면서, 예레미야의 이력서를 받으신 것도 아니고, 대학교의 Transcript를 받으시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예레미야가 태어나기도 전, 하나님이 그를 만드시기도 전부터 그를 아시고, 태어나기 전부터 구별하시고, 그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우셨다고 하십니다. 결국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기 전 까지 어떤 삶을 살아 왔고, 어떤 능력이나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그에게 일을맡기시는 것이 아니고, 예레미야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를 아시고, 그가 태어나는 장소와 시간, 그리고 그 곳에서 하게 될 일들을 이미 다 계획하셨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유스 그룹의 친구들이 왜 자신이 이 곳, 보스턴/뉴턴 지역에 와서 살게 되었는지 이해하기 힘들어서 고민 한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곳에서 사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이곳, 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사는 삶이 힘들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15살 때, 제 의지와는 별로 상관없이 부모님들의 결정으로 혼자 미국에 온 뒤로 내가 여기 와서 무얼 하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말도 제대로 못 알아듣고, 괜히 다른 친구들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낄 때 마다 그 생각은 더 깊게 저를 고민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를통해 하나님이 각 사람들을 지으시고, 구별하시고, 세우시는 방법을 보니, 어느 순간하나, 어느 장소 하나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계획 없이 가게 되는 곳은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그를 특별한 하나님의 장소로 옮기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도 아버지의 집을 떠나 이집트로 가게 하셨습니다; 모세를 부르실 때에도 그를 특별한 장소로 인도셨습니다; 이집트 땅에서 종처럼 살던 이스라엘도 하나님은 가나안으로 불러 내셨습니다;
다윗왕도 하나님의 뜻에 의해 왕이 되기 전 까지 수많은 곳을 떠돌아 다녔습니다; 구
약과 신약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하심에 따라 특별한 때에
특별한 장소로 부르심을 받아 가게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도 하늘 집을 떠나 하나님의 뜻을 위해 이 땅으로 보내어 진 것
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우리 학생부 친구들 모두가 이 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삶
을 살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엄마 아버지가 이 곳으로 왔기 때문이 아니고, 그래서
여러분이 어쩔 수 없이 따라왔기 때문이 아닌,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이곳에 있기로 계
획하셨기 때문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 곳에 보내어진 하나님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첫 번째로는 바로 여러분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예레미야는 “하나님, 저는 어린 아이입니다.” 라고 말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이렇게 말 하는 것은 정말 예레미야가 자기 자신의 나이
가 너무 어린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이 맡기시는 일을 하기에 자신
의 능력이 너무 부족하고 연약하기 때문에, 특히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하나
님의 말씀을 전할 때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막막함을 이야기 한다고 보
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방식은 항상 어려운 일을 시키시더라도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고, 담대히 행할 수 있도록 감동을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렇게 헌신 예배를 준비 하면서, 아직 직접 예배를 준비해 본 경험도 많지 않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어색하기도 하지만, 이 기회를 통해 즐거워하며 열정적으로 준비하는 것을 통해 어느 정도 성장이 있었을 줄로 믿습니다.
이러한 여러 경험과 기회들을 통해 하나님은 그 분이 부르신 백성들을 성장 시키시며, 이전에 할 수 없던 일들을 할 수 있는 능력들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특별히 여러분이 학생으로 있는 이 시기에 학교나 세상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만큼, 하나님과의 관계 가운데 더 깊은 성장 있길 바랍니다.
두 번째는 여러분을 특별한 하나님의 목적으로 세우시는 데에 있습니다. 어떤 대학을 가고, 무슨 직장을 가지고, 얼마의 급여를 받으며, 어느 정도의 풍요로움을 누리게 되는지에 대한 문제는 참 중요한 고민들입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것을 꿈꾸며, 계획하고, 준비하는데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기독교인이든,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든, 아니면 신을 믿지 않든 상관없이 모두가 다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우리 크리스천은 모두가 다 고민하는 “더 나은 삶”의 문제 위에 더 큰 목적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어떤 목적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귀한 이유 때문에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은마치 밤이 되면 캄캄하게 어두워지는 길목에 환한 가로등을 놓는 것과 같습니다. 한치앞도 보지 못해 더듬거리고 불안해하는 세상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과 사랑에 빠진 한사람은 밝은 빛과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우리를 세상 가운데 세우시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우리를 보고 우리의 기쁨에 동참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은 우리를 더 살기 좋은 환경으로 인도해 주시는 분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종종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을 사람의 간증을 통해 듣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편안하게 느낄 그 곳 보다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써 더 밝게 빛날 그 곳으로 인도하시며, 우리가 즐거워 할 그 곳으로 인도하시기 보다는, 어떤 곳이던지 우리가 선 그 곳에서 기뻐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의 놀라운 능력 중 하나입니다.
오늘 성령님께서 우리가 이 곳에 선 이유를 필그림 교회 모든 성도와 함께 나누길 원하신다고 믿습니다. 이 귀한 중고등부 헌신예배를 통해 이 자리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이 곳에 보내신 이유와, 이 자리에서 우리를 통해 하시는 일들을 배우며, 그 부르심에 기쁨으로 응답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