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족(知足)의 감사
성경본문: 디모데전서 6장 6-8절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But godliness with contentment is great gain. For we brought nothing into the world, and we can take nothing out of it. But if we have food and clothing, we will be content with that.
(1 Timothy 6:6-8)
사랑하는 필그림교회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찬양과 감사로 정성껏 예배 드리는 이 곳에 하나님의은혜와 역사가 풍성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추수 감사주일입니다. 설교 후에 함께 보겠지만, 지난 주간부터 황원정 자매님께서 우리 교인들에게 ‘한 해 동안 감사한 일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여러분의 대답을 화면에 담았습니다. 특별히 그것을 통해 우리가 시간을 내어 감사한 내용들을 생각할 시간들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 감사할까요? 아마도 대부분은 사업과 장사가 잘 되는 것, 대학이나 시험에 합격된 것, 취직 된 것, 진급 된 것, 자녀를 출산하거나 그들이 잘 되는 것, 풍성한 수확을 거둔 것 등등 우리 삶에 유익이 되거나 좋은 변화가 생길 때 감사가 터져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이것이 진정한 감사가 아님을 가르쳐 줍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 뜻이다라고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쳐 주는 몇 구절 중에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우리가 흔히 아는 것처럼 만약에 어떤 일이나 상황이 전개된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라는 조건부의 감사도, 혹은 “이러 이러 해 주셨기 때문에”라는 결과론적인 감사도 아닌, 주님은 언제나 항상 모든 상황 가운데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일이 정말로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조건(if)과 결과의 감사(because of)를 뛰어넘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in spite of) 감사해야 한다고 배웠지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우리 모두 감사를 배우는데, 실천하는데, 그리고 보다 성숙한 감사로 나아가기 위하여 그 출발점을 바로 이해하고 그것을 삶에 적용하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감사의 출발점은 어디일까요? 저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 가운데서 그 힌트를 찾아보았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다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나 만족하는 마음으로 경건하게 사는 사람에게 신앙은 큰 유익이 됩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므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경건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을 의미하며, 본문에서 경건하게 산다는 말은 ‘만족하는 마음으로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만족하나 보았더니 우리에게 입을 것과 먹을 것이 있음으로 만족해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6절과 8절 사이에 지족(만족)이라는 말을 설명하는 것 사이에 7절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7절은 ‘공수래(空手來) 공수거(空手去)’의 인생을 말해줍니다. 즉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간다라는 말입니다. 다시 요약하면 우리 인생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기에 우리에게 입을 것과 먹을 것만 있다면 만족하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감사가 참 쉬워 보입니다. 적어도 저나 여러분에게 있어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은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본문 내용과 관련된 이스라엘 사람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는 이 구절 들에 숨겨진 놀라운 신앙고백을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끝내고 모세의 인도로 홍해를 마른 땅같이 건넜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광야의 40년 생활을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광야를 지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은 아무 것도 없는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날마다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또 주신 것이 있습니다. “주께서 40년동안 너희를 인도하여 광야를 통행케 하셨거니와 너의 몸의 옷이 낡지 아니하였고 너의 발의 신이 헤어지지 아니하였으며.”(신명기 29장 5절) 무엇입니까? 40년간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 먹을 것과 마실 것만 주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광야의 모래 바람과 뜨거운 햇볕을 가릴 낡지 아니할 옷과 거친 광야를 걸어가도 헤어지지 아니할 신발을 저희에게 주신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40년 동안에 필요한 옷과 신발과 만나와 메추라기의 양은 얼마나 될까요? 정말로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은 그런 필요를 먼저 아시고 매일 매일의 순간에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놀라운 구원의 능력을 베푸셨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경건의 의미 속에는 내 삶의 순간 순간 마다 하나님은 나를 가장 잘 아시고 나의 필요를 아시고 당신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적절하게 공급해 주신다 라는 사실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 내게 없는 것으로 인해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지금 내게 없는 것을 나의 방법으로 무리하게 구하려 들지 않을 것입니다. 때론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 찬 나의 형편 없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예수 믿는 나를 사랑하사 나에게 필요한 것을 예비 해 주셨고 또 그것을 주실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참된 경건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의 출발점은 어디입니까?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소유와 경제와 건강의 압박을 극복하고 우리 안에 모든 것을 필요를 따라 공급하실 신실한 하나님을 인해 감사하고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주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전부를 주신 분이십니다. 그 전부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은 외아들을 내어 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의 불평과 원망의 근원이 되는 죄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생명을 주셨습니다. 새로운 믿음을 주셨습니다. 새로운 소망을 주셨습니다. 결국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만족한다라는 말 속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사역과 그 은혜에 대한 깨달음이 숨겨져 있음을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함의 출발점이 전부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데 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죄 사함 받고 구원받은 일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하박국 3장 17-18절)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하는 사람은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채우심과 인도하심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을 인정하게 못하게 되면 죽도록 내가 고생하고 죽도록 내가 먹을 것과 입을 것에 염려하게 된다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매일 매 순간 삶 속에서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사모님이 한창 때에 무거운 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집안 일 하랴, 자녀 양육하랴, 목사님 일 도우랴, 몸에 버겁고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랬나 보다 생각하니 원망이 그렇게 터져 나올 수 없습니다. 병실에 누워있는 자기에게 남편이 다가옵니다. “보기 싫으니 당장 나가요. 나 혼자 있게 내 버려 둬요.” 목사님도 아내에게 미안한지라 그냥 나옵니다. 목사님도 힘들어서 신학교 시절 은사님을 찾아갔습니다. 은사님은 목사님에게 조용히 예쁜 노트 한 권을 내어 주시면서 그것을 아내에게 갖다 주면서 감사할 내용을 적어보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저녁때 병실에서 같이 밥을 먹으면서 사모님께 은사님의 권면을 전했습니다. 밤중에 사모님은 그 빈 공책을 들여다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몸도 아픈데 감사라니…’ 그래도 은사님 얼굴이 떠올라 한가지 한가지 적어보기 시작합니다. ‘그래, 당장은 내게 먹을 것이 있지. 내게 먹을 것 주신 것 감사해야겠다. 그래 입을 것도 있지…’ 하나씩 하나씩 적다 보니 밤새 감사의 내용으로 채워갑니다. 한가지씩 감사를 외치면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불평과 원망이 차츰 가라앉습니다. 남편에게도 미안합니다. 그렇게 몇 날 몇 주가 지나더니 몸이 변화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무겁고 힘든 병이 점점 가벼워집니다. 몸에 힘이 생깁니다. 다시금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구원의 기쁨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감사했더니 그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한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미국 추수감사절의 근원이 되는, 플리머스(Plymouth)에 첫발을 내디딘 청교도들에게서도동일하게 발견됩니다. 영국에서 오는 도중에 거의 절반이나 되는 사람들이 죽어나갔습니다. 혹독한 겨울을 지내고 나서 이곳 원주민의 도움을 받아 그 다음에 첫 수확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야생 터키와 콩, 옥수수, 그리고 호박 등 그들이 굶주림을 면할 정도의 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청교도들은 그것을 쌓아놓고 다같이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의 추수 감사 예배에는 다른 고상한 내용이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그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주 내용이었지만, 그들의 현재와 미래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능력을 믿었던 것입니다. 더불어 그들의 예배 가운데는 이런 신앙고백이 담겨 있었다고 확신합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잠언 3장 9-10절)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보이지 않지만 분명하고 확신 있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미리 신앙으로 고백했던 것입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에 족한 줄로 알았던 그들의 믿음이 오늘의 부강한 미국을 만든 그 신앙임을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출발해서 친히 모든 것을 채우실 것을 미리 고백하고 감사하는 지족의 감사가 참된 경건의 출발점입니다. 그 곳에서부터 감사를 쌓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전부를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 믿음이 일평생 저와 여러분을 이끌어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본문: 디모데전서 6장 6-8절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But godliness with contentment is great gain. For we brought nothing into the world, and we can take nothing out of it. But if we have food and clothing, we will be content with that.
(1 Timothy 6:6-8)
사랑하는 필그림교회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찬양과 감사로 정성껏 예배 드리는 이 곳에 하나님의은혜와 역사가 풍성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추수 감사주일입니다. 설교 후에 함께 보겠지만, 지난 주간부터 황원정 자매님께서 우리 교인들에게 ‘한 해 동안 감사한 일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여러분의 대답을 화면에 담았습니다. 특별히 그것을 통해 우리가 시간을 내어 감사한 내용들을 생각할 시간들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 감사할까요? 아마도 대부분은 사업과 장사가 잘 되는 것, 대학이나 시험에 합격된 것, 취직 된 것, 진급 된 것, 자녀를 출산하거나 그들이 잘 되는 것, 풍성한 수확을 거둔 것 등등 우리 삶에 유익이 되거나 좋은 변화가 생길 때 감사가 터져 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이것이 진정한 감사가 아님을 가르쳐 줍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 뜻이다라고 성경이 분명하게 가르쳐 주는 몇 구절 중에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우리가 흔히 아는 것처럼 만약에 어떤 일이나 상황이 전개된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라는 조건부의 감사도, 혹은 “이러 이러 해 주셨기 때문에”라는 결과론적인 감사도 아닌, 주님은 언제나 항상 모든 상황 가운데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일이 정말로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조건(if)과 결과의 감사(because of)를 뛰어넘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in spite of) 감사해야 한다고 배웠지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우리 모두 감사를 배우는데, 실천하는데, 그리고 보다 성숙한 감사로 나아가기 위하여 그 출발점을 바로 이해하고 그것을 삶에 적용하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감사의 출발점은 어디일까요? 저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 가운데서 그 힌트를 찾아보았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다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나 만족하는 마음으로 경건하게 사는 사람에게 신앙은 큰 유익이 됩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므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경건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을 의미하며, 본문에서 경건하게 산다는 말은 ‘만족하는 마음으로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만족하나 보았더니 우리에게 입을 것과 먹을 것이 있음으로 만족해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6절과 8절 사이에 지족(만족)이라는 말을 설명하는 것 사이에 7절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7절은 ‘공수래(空手來) 공수거(空手去)’의 인생을 말해줍니다. 즉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간다라는 말입니다. 다시 요약하면 우리 인생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기에 우리에게 입을 것과 먹을 것만 있다면 만족하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감사가 참 쉬워 보입니다. 적어도 저나 여러분에게 있어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은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본문 내용과 관련된 이스라엘 사람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는 이 구절 들에 숨겨진 놀라운 신앙고백을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끝내고 모세의 인도로 홍해를 마른 땅같이 건넜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광야의 40년 생활을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광야를 지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은 아무 것도 없는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날마다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또 주신 것이 있습니다. “주께서 40년동안 너희를 인도하여 광야를 통행케 하셨거니와 너의 몸의 옷이 낡지 아니하였고 너의 발의 신이 헤어지지 아니하였으며.”(신명기 29장 5절) 무엇입니까? 40년간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 먹을 것과 마실 것만 주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광야의 모래 바람과 뜨거운 햇볕을 가릴 낡지 아니할 옷과 거친 광야를 걸어가도 헤어지지 아니할 신발을 저희에게 주신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40년 동안에 필요한 옷과 신발과 만나와 메추라기의 양은 얼마나 될까요? 정말로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은 그런 필요를 먼저 아시고 매일 매일의 순간에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놀라운 구원의 능력을 베푸셨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경건의 의미 속에는 내 삶의 순간 순간 마다 하나님은 나를 가장 잘 아시고 나의 필요를 아시고 당신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적절하게 공급해 주신다 라는 사실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 내게 없는 것으로 인해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지금 내게 없는 것을 나의 방법으로 무리하게 구하려 들지 않을 것입니다. 때론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 찬 나의 형편 없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예수 믿는 나를 사랑하사 나에게 필요한 것을 예비 해 주셨고 또 그것을 주실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참된 경건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의 출발점은 어디입니까?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소유와 경제와 건강의 압박을 극복하고 우리 안에 모든 것을 필요를 따라 공급하실 신실한 하나님을 인해 감사하고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주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전부를 주신 분이십니다. 그 전부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은 외아들을 내어 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의 불평과 원망의 근원이 되는 죄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생명을 주셨습니다. 새로운 믿음을 주셨습니다. 새로운 소망을 주셨습니다. 결국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만족한다라는 말 속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사역과 그 은혜에 대한 깨달음이 숨겨져 있음을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함의 출발점이 전부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데 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죄 사함 받고 구원받은 일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하박국 3장 17-18절)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하는 사람은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채우심과 인도하심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을 인정하게 못하게 되면 죽도록 내가 고생하고 죽도록 내가 먹을 것과 입을 것에 염려하게 된다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매일 매 순간 삶 속에서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사모님이 한창 때에 무거운 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집안 일 하랴, 자녀 양육하랴, 목사님 일 도우랴, 몸에 버겁고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랬나 보다 생각하니 원망이 그렇게 터져 나올 수 없습니다. 병실에 누워있는 자기에게 남편이 다가옵니다. “보기 싫으니 당장 나가요. 나 혼자 있게 내 버려 둬요.” 목사님도 아내에게 미안한지라 그냥 나옵니다. 목사님도 힘들어서 신학교 시절 은사님을 찾아갔습니다. 은사님은 목사님에게 조용히 예쁜 노트 한 권을 내어 주시면서 그것을 아내에게 갖다 주면서 감사할 내용을 적어보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저녁때 병실에서 같이 밥을 먹으면서 사모님께 은사님의 권면을 전했습니다. 밤중에 사모님은 그 빈 공책을 들여다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몸도 아픈데 감사라니…’ 그래도 은사님 얼굴이 떠올라 한가지 한가지 적어보기 시작합니다. ‘그래, 당장은 내게 먹을 것이 있지. 내게 먹을 것 주신 것 감사해야겠다. 그래 입을 것도 있지…’ 하나씩 하나씩 적다 보니 밤새 감사의 내용으로 채워갑니다. 한가지씩 감사를 외치면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불평과 원망이 차츰 가라앉습니다. 남편에게도 미안합니다. 그렇게 몇 날 몇 주가 지나더니 몸이 변화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무겁고 힘든 병이 점점 가벼워집니다. 몸에 힘이 생깁니다. 다시금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구원의 기쁨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감사했더니 그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한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미국 추수감사절의 근원이 되는, 플리머스(Plymouth)에 첫발을 내디딘 청교도들에게서도동일하게 발견됩니다. 영국에서 오는 도중에 거의 절반이나 되는 사람들이 죽어나갔습니다. 혹독한 겨울을 지내고 나서 이곳 원주민의 도움을 받아 그 다음에 첫 수확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야생 터키와 콩, 옥수수, 그리고 호박 등 그들이 굶주림을 면할 정도의 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청교도들은 그것을 쌓아놓고 다같이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의 추수 감사 예배에는 다른 고상한 내용이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그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주 내용이었지만, 그들의 현재와 미래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능력을 믿었던 것입니다. 더불어 그들의 예배 가운데는 이런 신앙고백이 담겨 있었다고 확신합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잠언 3장 9-10절)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보이지 않지만 분명하고 확신 있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미리 신앙으로 고백했던 것입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에 족한 줄로 알았던 그들의 믿음이 오늘의 부강한 미국을 만든 그 신앙임을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출발해서 친히 모든 것을 채우실 것을 미리 고백하고 감사하는 지족의 감사가 참된 경건의 출발점입니다. 그 곳에서부터 감사를 쌓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전부를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 믿음이 일평생 저와 여러분을 이끌어가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