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계산할 때 (When We Settle Accounts with God)
성경본문: 마태복음 6장 31-34절
신년 감사예배로 2013년을 시작한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한해 마지막 주일이 빨리도 우리곁에 다가왔습니다. 돌이켜보면 올 한해 동안 많은 변화를 경험하신 분들도 계실 것이고, 또 한 편으로는 어떻게 살았나 정신 없이 사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여러 면에서 힘든 과정을 경험하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이제 올 한해도 이틀 정도 남았는데, 우리 자신을 겸허히 돌아보고 한 번쯤은 올 한 해이든지 아니면 여러분이 달려온 인생에 대해서 솔직한 회고록을 써볼 수 있는 그런 기회를 가져 보시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산상수훈 말씀 가운데 아주 익숙한 부분을 읽었습니다. 특별히 마태복음 6장 33절, “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구절은 아주 귀에 배길 정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귀한 은혜가 이 말씀 가운데 담겨져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함께 이 말씀 전후를 살펴 봄으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다시 한 번 깨닫는 시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본문 말씀을 통해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실 오늘 전체 본문의 내용은 6장 25절부터 시작하는데 34절까지 ‘염려’라는 단어가 무려 6번이나 나옵니다. 예수님은 그만큼 산 위에 모인 제자들과 거기에 함께 한 수많은 일반 백성들이 염려 가운데 살고 있는 모습을 보신 것입니다. 무엇을 위한 염려일까요? 아주 단순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입니다. 우리가 하는 거의 모든 염려가 우리의 목숨과 몸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부분이라는 사실을 가르켜 줍니다. 어떤 분은 본인의 염려하는 것이 이런 것과는 아주 다르다고 항변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그것의 궁극적인 결과와 목표점을 살펴보면 거의 예외 없이 예수님께서 진단하신 그 말씀의 확장판임을 부인하실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니 솔직히 한번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올 한해 열심히 살아왔는데 무엇을 위해 달려 오셨습니까? 애써 애둘를려고 해도 가슴 속 깊이 나오는 답변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에 대한 문제 해결일 것입니다. 다만 그 차이가 나와 우리 가족만을 위한 것인 것 아니면 더 확대된 공동체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사실, 누구에게나 한 두번 정도는 올 한해 어렵고 힘든 상황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가장 먼저 다가 온 위기나 어려움은 대부분 경제적인 문제와 관련된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자녀나 가족 문제와 연결이 되고, 앞으로의 삶과도 연결이 되었을 것입니다. 경제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장 본능적인 감정이 염려로 인한 두려움(fear)인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인생과 관련하여 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염려로 가득 찬 인생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를 돌이켜 보면 염려를 만든 후회되는 일이 많고, 지금 현재를 살아가면서 염려 때문에 원망과 불평과 분노와 더불어 씨름하고 있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조심 때문에 또 염려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올 한 해 여러분이 경험한 크고 작은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견딜 수 있으셨나요? 모름지기 거의 대부분 마음 고생은 하셨지만 그래도 어떤 모습으로든지 해결해 오셨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 당시에는 불안하고 앞이 캄캄해 보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냥 절로 해결되는 것도 있고, 힘이 들었지만 마음 독하게 먹고 헤쳐 나가야지 하면서 버티고 나갔더니 이겨 나간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저 또한 목회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자유롭지 못하고 염려할 때가 많았지만, 그래도 무사히 지금까지 온 것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이 전적으로 맞다라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마음속의 근심이나 염려는 오히려 그 문제를 키우기만 할 뿐 전혀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염려한다는 것은 우리를 과거에 붙들어 놓고, 현재의 상황에 꽉 옭아매고 미래를 발목 잡는 절망의 바이러스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은행의 은행장인 다우링(Dowling)이 전쟁에서 다친 Veterans들의 초청을 받아 특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특강을 하면서 상이용사들을 막 공격했습니다. '당신들은 패배주의자들, 남을 의지하고 국가의 연금을 축내며 되는 대로 먹고 마시며 놀기만 하는 나쁜 사람들입니다. 왜 열심히 일하지 않고 자꾸 의지하려고만 합니까?…' 나라를 위해 싸우다 부상당한 상이용사들을 면전에서 그렇게 공격하니 그들이 화가 나서 그에게 맥주병과 재떨이를 던지며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당신들이 잘못하고 있고, 당신들의 자세가 잘못된 것입니다.'라고 계속해서 공격했습니다. 그러자 상이용사들이 미친 듯이 일어섰습니다. 그때 그는 자신의 한쪽 옷소매를 걷어 올렸습니다. 쇠갈고리가 나왔습니다. 다른 소매도 걷어 올렸습니다. 양팔 모두 가짜 팔이었습니다. 그는 바지도 걷어 올렸습니다. 양다리도 다 나무다리였습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졌습니다. '여러분, 나는 열두 살 때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눈 위에 10시간 동안 버려져 있었습니다. 그 바람에 두 팔과 두 다리를 다 잘라야만 했습니다. 나는 열두 살에 두 팔과 두 다리를 다 잃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의욕을 갖고 '이대로 최선을 다하며 살리라. 남에게 신세지지 않고 살리라. 나는 성공하리라'라고 각오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서 이렇게 은행장이 되었습니다. 양팔과 양다리가 없는 나도 노력해서 은행장이 되었는데 당신들은 나보다 낫지 않습니까? 왜 그냥 먹고 놀기만 합니까?' 모든 상이용사들이 유구무언이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라고 반문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고 오히려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에 대한 염려는 이방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많은 것을 소유했지만 미래의 안전을 위해 여전히 동분서주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우리의 생명의 주관자이시며, 우리는 이방인들과는 달라야 할 믿음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인식시켜 주십니다. 믿음의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크고 작은 위기의 순간마다, 염려의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그 일들을 넉넉하게 이기게 하시거나 피하게 하십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치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10장 13절).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을 가지시되 믿음으로 간구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들으시고 역사하실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본문은 내일 일에 대한 가장 좋은 해결책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그것은 인생의 우선 순위를 잘 정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정신 없이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선 순위를 잘 정한 사람은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속도보다는 방향이 그리고 아름다운 결과를 내기 위해 정당한 과정을 거칠 용기와 힘이 있습니다. 우선 순위를 정함에 있어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의 목표가 무엇인지, 지금 우리가 어느 때에 있는지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목표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본문 말씀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믿음의 사람들로서 우리가 가져야 할 두 가지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God’s Kingdom)’와 ‘그의 의(His Righteousness)’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떤 곳입니까? 어떤 사람이 소유하게 될까요?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이 절대적으로 인정되는 곳입니다. 과거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시고 그 나라를 하나님 나라로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에는 열방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두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 사람들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만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장 3, 5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는 사람들은 모든 염려의 근원이 되는 죄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아래서 해결 받을 수 있고 우리 안에 영적 변화를 일으켜 새로운 거룩을 사모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제는 염려의 자녀에서 생명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의미 속에는 반드시 우리의 구원이 전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확신이 없다고 하신다면 이 시간 생명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 마음 속에 모셔 들이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울러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라는 의미 속에는 나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는 많은 사람들, 가족들과 형제들과 사랑하는 많은 이웃들이 믿음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도록 소원해야 합니다. 마치 가장 귀한 보배를 발견한 사람이 그것을 홀로 가지지 않고 이웃들과 함께 나누며 그 기쁨이 배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믿음의 사람들이 물질숭배와 지배와 군림을 특성으로 하는 세상 나라와는 달리 우리에게 주신 학문과 물질과 은사를 통해 섬김과 사랑으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우선 순위는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속한 이방 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른 존재들입니다. 하늘에 속한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면서 이 땅에서 거룩을 실천해 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위선적인 바리새인들보다도 더 분명한 거룩을 실천해야 합니다. 즉 우리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넘쳐나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장 1-2절) 다른 말로 쉽게 요약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일’들을 하라는 것입니다. 예배도 기도도, 선교도 봉사도 섬김도 교육도 이 모든 일들을 우리 안에 주신 거룩을 따라 성령 안에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듯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선 순위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에 두었을 때, 우리의 인생은 어렵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것을 증명합니다. 보이지 않는 교회를 세우고자 노력하시는 높은뜻 선교회 김동호 목사님이 전에 동안 교회를 담임하게 되셨습니다. 교회가 성장하기에 새로운 성전을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던 중에 이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본인 교회의 성전 건축과 함께 일산에 지교회 성전을 함께 건축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당연히 돈이 더 들고 힘도 더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목사님께 감동을 주셔서 먼저 그 지교회를 건축하게 하셨습니다. 목사님과 성도들이 아멘으로 순종했습니다. 6억이라는 별도의 재정이 들어갔지만 그 지교회가 잘 지어졌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그 일을 우선으로 하고 기도하는 동안 교회가 4배로 성장했습니다. 그전 같으면 재정적으로 무척 힘이 들었을 그 성전건축이 오히려 두 배 쉬워지고 성도님들이 기도와 성령으로 준비되었기에 아무런 문제없이 아름다운 새성전이 지어지는 그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김동호 목사님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자신과 교회의 우선순위가 제대로 되었더니 모든 것이 순조롭고 믿음 안에서 이것도 얻고 저것도 이룰 수 있는 은혜를 경험했노라고 간증을 하는 것을 보고 도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거꾸로 합니다. 그러기에 이것도 얻지 못하고 저것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우선 순위는 무엇입니까? 내년을 준비하면서 하나님께 맡겨 드려야 할 것과 내가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되새겨보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언젠가 꼭 하나님 앞에서 계산할 때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먹을 것과 마실 것 그리고 입을 것으로 우리와 계산하지 않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의 재산이나 물질을 가지고 계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육이나 우리의 지식을 가지고 계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건강과 쌓아놓은 미래의 저축들에 대해서 계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우리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 것을 가지고 계산하겠노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믿음과 충성에 대해서 계산하시겠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며칠 전 태풍 때문에 수해를 심하게 입은 필리핀에 기독교연합으로 구호활동을 여러 교단 지도자들이 나갔습니다. 저희 교단을 대표해서 부총회장이신 천호동 교회 정연성 장로님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구제활동을 마치고 배로 돌아오시는 중에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1948년생이시니 아직은 더 일을 한창 하실 젊은 나이십니다. 한편으로는 먹먹하고 한편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가장 귀한 계산을 받으실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인생의 종말에 대해서 만일 교통카드처럼 얼마 남았는지 해가 지날 때마다 알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것은 아무런 사인(sign)도 경종도 없이 다가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 한해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달려 오셨습니까? 여러분은 제대로 된 우선순위가 있으십니까?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여러분 무엇을 가지고 계산하시겠습니까?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여러분은 할 말이 있습니까? 이제 올 한해를 이틀 정도 남겨놓았습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 안에 하나님이 계시는지,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는지, 그동안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아멘으로 순종했는지 자신을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정말로 믿음으로 올 한해 살았는지 자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배 드릴 때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고 사모하는 마음오로 준비하고 기쁘게 드렸는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감찰하시고 우리의 모든 필요를 다 채우실 것에 대해서 확신했는지, 봉사와 섬김이 그저 직분에서 나오는 겉껍데기의 모습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으로 했는지, 힘들고 어려울 일을 당할 때마다 믿음으로 나는 말을 절제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했는지, 또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믿음과 사랑의 격려를 했는지, 주변에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가족들에게 믿음으로 복음과 천국에 대해서 전했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시기를 권면합니다. 이런 회고와 반성을 통해 다시금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세상을 향한 복의 통로가 되는 우리 보스톤 필그림교회 교인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성경본문: 마태복음 6장 31-34절
신년 감사예배로 2013년을 시작한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한해 마지막 주일이 빨리도 우리곁에 다가왔습니다. 돌이켜보면 올 한해 동안 많은 변화를 경험하신 분들도 계실 것이고, 또 한 편으로는 어떻게 살았나 정신 없이 사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여러 면에서 힘든 과정을 경험하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이제 올 한해도 이틀 정도 남았는데, 우리 자신을 겸허히 돌아보고 한 번쯤은 올 한 해이든지 아니면 여러분이 달려온 인생에 대해서 솔직한 회고록을 써볼 수 있는 그런 기회를 가져 보시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산상수훈 말씀 가운데 아주 익숙한 부분을 읽었습니다. 특별히 마태복음 6장 33절, “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구절은 아주 귀에 배길 정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귀한 은혜가 이 말씀 가운데 담겨져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함께 이 말씀 전후를 살펴 봄으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다시 한 번 깨닫는 시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본문 말씀을 통해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실 오늘 전체 본문의 내용은 6장 25절부터 시작하는데 34절까지 ‘염려’라는 단어가 무려 6번이나 나옵니다. 예수님은 그만큼 산 위에 모인 제자들과 거기에 함께 한 수많은 일반 백성들이 염려 가운데 살고 있는 모습을 보신 것입니다. 무엇을 위한 염려일까요? 아주 단순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입니다. 우리가 하는 거의 모든 염려가 우리의 목숨과 몸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부분이라는 사실을 가르켜 줍니다. 어떤 분은 본인의 염려하는 것이 이런 것과는 아주 다르다고 항변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그것의 궁극적인 결과와 목표점을 살펴보면 거의 예외 없이 예수님께서 진단하신 그 말씀의 확장판임을 부인하실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니 솔직히 한번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올 한해 열심히 살아왔는데 무엇을 위해 달려 오셨습니까? 애써 애둘를려고 해도 가슴 속 깊이 나오는 답변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에 대한 문제 해결일 것입니다. 다만 그 차이가 나와 우리 가족만을 위한 것인 것 아니면 더 확대된 공동체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사실, 누구에게나 한 두번 정도는 올 한해 어렵고 힘든 상황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가장 먼저 다가 온 위기나 어려움은 대부분 경제적인 문제와 관련된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자녀나 가족 문제와 연결이 되고, 앞으로의 삶과도 연결이 되었을 것입니다. 경제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장 본능적인 감정이 염려로 인한 두려움(fear)인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인생과 관련하여 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염려로 가득 찬 인생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를 돌이켜 보면 염려를 만든 후회되는 일이 많고, 지금 현재를 살아가면서 염려 때문에 원망과 불평과 분노와 더불어 씨름하고 있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조심 때문에 또 염려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올 한 해 여러분이 경험한 크고 작은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견딜 수 있으셨나요? 모름지기 거의 대부분 마음 고생은 하셨지만 그래도 어떤 모습으로든지 해결해 오셨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 당시에는 불안하고 앞이 캄캄해 보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냥 절로 해결되는 것도 있고, 힘이 들었지만 마음 독하게 먹고 헤쳐 나가야지 하면서 버티고 나갔더니 이겨 나간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저 또한 목회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자유롭지 못하고 염려할 때가 많았지만, 그래도 무사히 지금까지 온 것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이 전적으로 맞다라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마음속의 근심이나 염려는 오히려 그 문제를 키우기만 할 뿐 전혀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염려한다는 것은 우리를 과거에 붙들어 놓고, 현재의 상황에 꽉 옭아매고 미래를 발목 잡는 절망의 바이러스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은행의 은행장인 다우링(Dowling)이 전쟁에서 다친 Veterans들의 초청을 받아 특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특강을 하면서 상이용사들을 막 공격했습니다. '당신들은 패배주의자들, 남을 의지하고 국가의 연금을 축내며 되는 대로 먹고 마시며 놀기만 하는 나쁜 사람들입니다. 왜 열심히 일하지 않고 자꾸 의지하려고만 합니까?…' 나라를 위해 싸우다 부상당한 상이용사들을 면전에서 그렇게 공격하니 그들이 화가 나서 그에게 맥주병과 재떨이를 던지며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당신들이 잘못하고 있고, 당신들의 자세가 잘못된 것입니다.'라고 계속해서 공격했습니다. 그러자 상이용사들이 미친 듯이 일어섰습니다. 그때 그는 자신의 한쪽 옷소매를 걷어 올렸습니다. 쇠갈고리가 나왔습니다. 다른 소매도 걷어 올렸습니다. 양팔 모두 가짜 팔이었습니다. 그는 바지도 걷어 올렸습니다. 양다리도 다 나무다리였습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졌습니다. '여러분, 나는 열두 살 때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눈 위에 10시간 동안 버려져 있었습니다. 그 바람에 두 팔과 두 다리를 다 잘라야만 했습니다. 나는 열두 살에 두 팔과 두 다리를 다 잃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의욕을 갖고 '이대로 최선을 다하며 살리라. 남에게 신세지지 않고 살리라. 나는 성공하리라'라고 각오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서 이렇게 은행장이 되었습니다. 양팔과 양다리가 없는 나도 노력해서 은행장이 되었는데 당신들은 나보다 낫지 않습니까? 왜 그냥 먹고 놀기만 합니까?' 모든 상이용사들이 유구무언이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라고 반문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고 오히려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에 대한 염려는 이방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많은 것을 소유했지만 미래의 안전을 위해 여전히 동분서주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우리의 생명의 주관자이시며, 우리는 이방인들과는 달라야 할 믿음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인식시켜 주십니다. 믿음의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크고 작은 위기의 순간마다, 염려의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그 일들을 넉넉하게 이기게 하시거나 피하게 하십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치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10장 13절).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을 가지시되 믿음으로 간구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들으시고 역사하실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본문은 내일 일에 대한 가장 좋은 해결책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그것은 인생의 우선 순위를 잘 정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정신 없이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선 순위를 잘 정한 사람은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속도보다는 방향이 그리고 아름다운 결과를 내기 위해 정당한 과정을 거칠 용기와 힘이 있습니다. 우선 순위를 정함에 있어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은 우리의 목표가 무엇인지, 지금 우리가 어느 때에 있는지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목표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본문 말씀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믿음의 사람들로서 우리가 가져야 할 두 가지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God’s Kingdom)’와 ‘그의 의(His Righteousness)’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떤 곳입니까? 어떤 사람이 소유하게 될까요?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이 절대적으로 인정되는 곳입니다. 과거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시고 그 나라를 하나님 나라로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에는 열방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두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 사람들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만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장 3, 5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는 사람들은 모든 염려의 근원이 되는 죄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아래서 해결 받을 수 있고 우리 안에 영적 변화를 일으켜 새로운 거룩을 사모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제는 염려의 자녀에서 생명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의미 속에는 반드시 우리의 구원이 전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확신이 없다고 하신다면 이 시간 생명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 마음 속에 모셔 들이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울러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라는 의미 속에는 나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는 많은 사람들, 가족들과 형제들과 사랑하는 많은 이웃들이 믿음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도록 소원해야 합니다. 마치 가장 귀한 보배를 발견한 사람이 그것을 홀로 가지지 않고 이웃들과 함께 나누며 그 기쁨이 배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믿음의 사람들이 물질숭배와 지배와 군림을 특성으로 하는 세상 나라와는 달리 우리에게 주신 학문과 물질과 은사를 통해 섬김과 사랑으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우선 순위는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속한 이방 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른 존재들입니다. 하늘에 속한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면서 이 땅에서 거룩을 실천해 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위선적인 바리새인들보다도 더 분명한 거룩을 실천해야 합니다. 즉 우리 삶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넘쳐나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장 1-2절) 다른 말로 쉽게 요약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일’들을 하라는 것입니다. 예배도 기도도, 선교도 봉사도 섬김도 교육도 이 모든 일들을 우리 안에 주신 거룩을 따라 성령 안에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듯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선 순위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에 두었을 때, 우리의 인생은 어렵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것을 증명합니다. 보이지 않는 교회를 세우고자 노력하시는 높은뜻 선교회 김동호 목사님이 전에 동안 교회를 담임하게 되셨습니다. 교회가 성장하기에 새로운 성전을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던 중에 이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본인 교회의 성전 건축과 함께 일산에 지교회 성전을 함께 건축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당연히 돈이 더 들고 힘도 더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목사님께 감동을 주셔서 먼저 그 지교회를 건축하게 하셨습니다. 목사님과 성도들이 아멘으로 순종했습니다. 6억이라는 별도의 재정이 들어갔지만 그 지교회가 잘 지어졌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그 일을 우선으로 하고 기도하는 동안 교회가 4배로 성장했습니다. 그전 같으면 재정적으로 무척 힘이 들었을 그 성전건축이 오히려 두 배 쉬워지고 성도님들이 기도와 성령으로 준비되었기에 아무런 문제없이 아름다운 새성전이 지어지는 그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김동호 목사님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자신과 교회의 우선순위가 제대로 되었더니 모든 것이 순조롭고 믿음 안에서 이것도 얻고 저것도 이룰 수 있는 은혜를 경험했노라고 간증을 하는 것을 보고 도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거꾸로 합니다. 그러기에 이것도 얻지 못하고 저것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우선 순위는 무엇입니까? 내년을 준비하면서 하나님께 맡겨 드려야 할 것과 내가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되새겨보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언젠가 꼭 하나님 앞에서 계산할 때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먹을 것과 마실 것 그리고 입을 것으로 우리와 계산하지 않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의 재산이나 물질을 가지고 계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육이나 우리의 지식을 가지고 계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건강과 쌓아놓은 미래의 저축들에 대해서 계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우리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 것을 가지고 계산하겠노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믿음과 충성에 대해서 계산하시겠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며칠 전 태풍 때문에 수해를 심하게 입은 필리핀에 기독교연합으로 구호활동을 여러 교단 지도자들이 나갔습니다. 저희 교단을 대표해서 부총회장이신 천호동 교회 정연성 장로님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구제활동을 마치고 배로 돌아오시는 중에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1948년생이시니 아직은 더 일을 한창 하실 젊은 나이십니다. 한편으로는 먹먹하고 한편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가장 귀한 계산을 받으실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인생의 종말에 대해서 만일 교통카드처럼 얼마 남았는지 해가 지날 때마다 알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것은 아무런 사인(sign)도 경종도 없이 다가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 한해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달려 오셨습니까? 여러분은 제대로 된 우선순위가 있으십니까?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여러분 무엇을 가지고 계산하시겠습니까?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여러분은 할 말이 있습니까? 이제 올 한해를 이틀 정도 남겨놓았습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 안에 하나님이 계시는지,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는지, 그동안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아멘으로 순종했는지 자신을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정말로 믿음으로 올 한해 살았는지 자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배 드릴 때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고 사모하는 마음오로 준비하고 기쁘게 드렸는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감찰하시고 우리의 모든 필요를 다 채우실 것에 대해서 확신했는지, 봉사와 섬김이 그저 직분에서 나오는 겉껍데기의 모습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으로 했는지, 힘들고 어려울 일을 당할 때마다 믿음으로 나는 말을 절제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했는지, 또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믿음과 사랑의 격려를 했는지, 주변에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가족들에게 믿음으로 복음과 천국에 대해서 전했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시기를 권면합니다. 이런 회고와 반성을 통해 다시금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세상을 향한 복의 통로가 되는 우리 보스톤 필그림교회 교인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