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에서 나오는 물 The Water Which Comes from the Temple
성경본문: 에스겔 47장 1-12절
우리 교회가 함께 기도하는 니카라구아의 이동홍 선교사님과 전구 선교사님은 몇 해 전부터 새로운 선교사역 하나를 시작하셨습니다. 바로 ‘엘 파라이소’라는 지역에 우물을 파주는 사역입니다. 사실 니카라구아는 수도가 ‘마나구아’, 즉 ‘물이 많은 도시’라고 불릴 만큼 물이 부족한 나라는 아닙니다. 그러나 빈민들이 집중해서 몰려사는 엘 파라이소는 문제가 다릅니다. 원래 물이 귀하고 우물이 없는 지역이라 지역 사람들은 30분 이상을 걸어서 물을 길러 다녀야만 했습니다. 그곳에 사역하는 선교사님 조차도 0.5리터 물병 2개로 사워를 해야만 하는 열악한 지역입니다. 더러운 물을 마심으로 인해 사람들에게서 피부병이 흔하게 발견되고, 더운 열기로 인해 인해 기타 다른 질병이 흔하게 발생하는 곳입니다. 그런 그곳에 디트로이트 한인교회의 도움을 받아 여러 선교사님들이 협력하여 현지인 교회 마당에 우물을 팠습니다. 아침 5시부터 밤 11시까지 동네 사람들이 수동식으로 된 펌프를 이용해서 물을 퍼냅니다. 이제는 동네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게 되었고,아이들도 마음껏 샤워와 빨래를 할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우물을 통해 육신의 샘물을 얻고 교회를 통해 영혼의 샘물을 얻는 그곳이 바로 천국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오늘 저희가 읽었던 에스겔서 47장도 바로 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에스겔서는 대략 스물 다섯 살 나이에 나라를 잃고 포로로 끌려가 바벨론 그발 강가에 살던 에스겔(약 B.C. 593~ B.C. 571)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과 환상에 관한 성경입니다. 암울한 한 시대 동안 이스라엘과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이스라엘의 회복과 소망을 선포하게 됩니다. 그의 활동기 거의 끝자락에 받은 환상, 즉 예루살렘 새성전에 대한 환상(41-46장)을 받고 나서 시작되는 환상이 바로 오늘 저희가 읽은 말씀입니다. 오늘 저희가 읽은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에스겔이 하나님 손에 이끌리어 성전 안에 들어갔다가 제단에서 흘러 나오는 물을 보게 됩니다. 그 물은 제단 남편으로 흘렀다가 동편 문 밑으로 스며 밖으로 흘러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 물은 동쪽으로 흘러 조그만 시내를 이루더니 점점 커지고 넓어지고 깊어집니다. 결국에는 능히 헤엄칠 만하고 또한 사람이 건너지 못할 큰 강이 됩니다. 에스겔은 그 물이 흐르는 강 주변으로 과실 나무를 비롯하여 여러 나무가 심히 번성하고 강의 모든 물고기와 생물이 심히 많은 것과 강 주변이 회복되고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 본문이 2014년 새해를 새롭게 시작한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올 한 해 동안 여러분의 삶의 중심지가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물은 생명수입니다. 그것이 지나는 곳마다 살리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회복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좋은 열매 맺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말 좋은 물, 살아 있는 생수에 대한 갈급증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1절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니라” 물의 근원이 참 중요합니다. 만일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챨스강(Charles River)의 근원인 합킨톤(Hopkinton)의 에코 호수(Echo Lake)가 오염되고 썩은 물을 보낸다면 그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 병들고 죽게 될 것입니다. 2010년에 중간 상수원인 Weston에서 큰 상수도관이 터져 일주일 동안 깨끗한 물을 얻지 못해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수돗물을 틀었는데 그곳에서 흙탕물이 펑펑 쏟아져 나왔고 그 물은 샤워조차도 할 수 없는 더러운 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이 본 물의 근원은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전으로부터 나오는 물은 비록 작은 물이었지만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물이었습니다. 그 물은 하나의 지류로 흘렀지만 큰 강을 이룰 정도로 엄청난 양과 역동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새해를 맞아 새롭게 다짐하고 제대로 신앙생활을 한번 해야겠다고 하시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생명수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를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믿음과 신앙이 제자리 걸음이라면 한번쯤 생각해봐야 합니다. 여러분과 교회의 거리가 얼마만큼인지 말입니다. 어느 시에서 도로 중앙선 페인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요즘이야 모든 것을 기계식으로 하니까 상관이 없지만 당시에는 사람이 모든 것을 해야만 하던 시기입니다. 우연찮게 솜씨가 좋다고 해서 한 사람이 뽑혔습니다. 첫날에는 이 사람이 10마일을 페인트 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상관이 굉장히 좋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Wow, 하루에 10마일씩이나 칠하다니 참 대단하다.” 둘째 날은 이 사람이 7마일 정도 칠했습니다. “흠, 그런대로 괜찮군!” 셋째 날은 3마일 밖에 칠하지 못하더니 넷째 날은 1마일도 칠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너무 실망입니다. 상관이 이 사람을 불러 그 연유를 묻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이렇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예, 페인트를 담은 큰 통이 가까이 있을 때는 10마일도 아무 문제 없었지요. 그러나 매일 점점 그 통이 너무 멀리 있어 왔다 갔다 하느라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쳐 이 정도 밖에 할 수 없네요.” 그렇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어디에나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계시는 분이시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세 사람이라도 함께 모여 기도하고 예배하는 곳에 계심을 인식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성전에 계신다’는 하박국 선지자의 말씀(하박국 2장 20절)이 더 와 닿습니다. 신앙생활의 후퇴는 바로 교회 가기 싫어지는 것부터, 교회로부터 멀리 떨어지는 것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 한해는 교회를 가까이 하십시오. 교회 가기를 사모하십시오. 그곳에서 예배하면서 하나님 만나기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그 아름다운 생명수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모해야 될 그 생명수는 무엇을 말합니까? 넓게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히브리서 4장 12-13절) 이 세상의 모든 것 즉 풀이나 꽃과 같은 육체의 영광은 시들고 말라지고 종국에는 없어지기 마련입니다. 비록 천지는 없어지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세세토록 영원합니다(베드로전서 1장 24-25절). 교회에 나와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여러분에게 큰 역사가 임할 것입니다. 그런 기대와 확신을 가지고 예배를 사모하고 하나님 만남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좁게는 그 생명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을 의미합니다. 참된 진리를 갈망하던 사마리아 여인의 목마름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복음 4장 13-14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죄가 속죄함을 받았고, 우리의 신분이 다시금 종의 신분에서 자녀의 신분으로 바뀌었습니다. 주님의 보혈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소망과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2013년까지는 우리의 모습이 실패와 좌절 가운데 있고, 아니 예수님을 알기 전까지의 우리의 모습 속에 도무지 변화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그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는 second chance, 즉 하늘로부터 값없이 내리는 은혜를 힘입어 새롭게 변화를 받을 새사람, 새생활의 가능성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7장 37-39절에서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신앙 생활을 하는 동안 힘을 얻고 역동성을 가지기 위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성령충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고 성령충만은 일어나지도 유지할 수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필그림가족 여러분! 올 한해는 교회를 사랑하시고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에 의지하여 여러분 안에서 성령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셔서 더욱 뚜렷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순전한 인도를 받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본문 말씀이 우리 삶에 주시는 도전의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생명수의 흐름에따른 변화입니다. 먼저 3절부터 5절까지 살펴보면 우리가 볼 수 있는 변화는 성전에서 흘러 나오는 물이 일천척마다 깊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발목에 오르더니 다음에는 무릎에 차고 그 다음에는 허리에까지 오르며 마지막에는 물이 크게 넘쳐 헤엄칠 정도로 크게 깊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을 두 부분으로 적용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는 개인적인 신앙의 체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영향을 미치되 결국에는 은혜의 강물에 잠길 정도로 그런 큰 영향력이 여러분에게도 미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읽는 말씀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 이외에도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다 적용된다는 사실입니다. 문학가나 과학자, 그리고 예술가나 체육인들에게도 적용됩니다. 지식 많은 사람이나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합니다. 어쩌면지금까지 여러분이 알고 있는 성경의 내용과 그 말씀의 깊이는 지극히 작은 부분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여러분은 말씀을 들으면서 아직 여러분 몸을 잠길 정도의 하나님 말씀, 그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지도 않았는데 다 알고 경험한 것처럼, 혹은 나는 Science를 하니까, 나는 Technology를 하니까, 나는 운동을 하니까 성경이 상관없다고 말씀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감찰하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영역, 즉 우리의 모든 지정의 부분을 주관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계획하신 1%도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것들은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지극히 희미한 부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 지식과 연구와 노력은 어느 정도 통계적으로 가능한 수치적인 진보를 이룬다면, 하나님 안에 있는 지혜와 지식은 그 한계를 능히 뛰어 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믿음의 힘이라고 부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를 통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에베소서 3장 17-19절)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이런 놀라운 역사를 창일한 은혜의 바다에서 마음껏 헤엄치는 것처럼 누리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또한 생명수의 흐름에 따른 변화는 우리 개개인의 평생의 믿음의 여정이 성장하고 풍성해지며 성숙해지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과 공동체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살아있는 복음의 말씀은 그것이 시작되었을 때는 지극히 미미했습니다. 마치 발목에 찬 물은 겉보기에도 하찮고 별로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무릎을 지나 허리까지 오르고 우리의 몸이 잠길 정도라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넓고 깊게 흐르는 거대한 강물은 바위를 쪼개고 산을 부술만한 엄청난 힘과 수많은 종류의 각종 생명체를 담아낼 생명의 능력이 그곳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의 기독교는 겨우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성령충만을 받고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급기야는 로마와 전세계를 덮어버릴 큰 힘과 역사를 바꾸는 역동적인 강물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큰 기업가나 좋은 가문들을 볼 때에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합니다. 그들도 역시 모두가 출발점은 별 볼일 없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복음에 붙들린바 되었을 때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워너메이커(John Wanamaker), 록펠러(John D. Rockefeller), 링컨(Abraham Lincoln), 마틴 루터 킹 (Martin Luther King Jr.) 같은 사람들은 모두 복음을 통해 그들이 변화되었거나 그들 부모에게서 시작된 복음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의 가문은 개인을 뛰어넘어 미국이라는 국가적 신앙적 공동체를 떠받드는 더욱 귀한 가문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여기서 한번 질문해 봐야 합니다. 우리 가족에게 복음이 들어왔는데, 혹은 우리 중에도 벌써 예수 믿은 지 4대 째를 넘어가고 있는데 어떤 복음의 변화와 능력이 있는지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자녀들에게 후손들에게 정말 좋은 것을 물려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우리는 과연 무엇을 남겨주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것들은 어떤 영향력을 끼칠지 말입니다. 진실로 우리 가족과 후손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면 전해질수록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와 큰 생명의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말씀으로 말미암아 우리 공동체 안에 생겨난 작은 믿음은 비록 작아 보이지만 언젠가는 큰 강을 이루고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모든 생명체를 담을 만한 큰 그릇의 공동체가 될 줄로 확신합니다.
분명 이 생명수 강이 흐르는 곳마다 회복과 생명으로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지라.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감으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또 이 강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 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이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에스겔 47장 8~12절). 이 시간 성전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그 생명수를 몸이 잠길 정도로 경험하기를 소원하는 우리 모두에게, 우리의 가족과 자녀에게, 그리고 우리 교회와 이 나라 위에 이런 회복과 가슴 벅찬 변화의 풍성함이 올 한해 동안 이어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본문: 에스겔 47장 1-12절
우리 교회가 함께 기도하는 니카라구아의 이동홍 선교사님과 전구 선교사님은 몇 해 전부터 새로운 선교사역 하나를 시작하셨습니다. 바로 ‘엘 파라이소’라는 지역에 우물을 파주는 사역입니다. 사실 니카라구아는 수도가 ‘마나구아’, 즉 ‘물이 많은 도시’라고 불릴 만큼 물이 부족한 나라는 아닙니다. 그러나 빈민들이 집중해서 몰려사는 엘 파라이소는 문제가 다릅니다. 원래 물이 귀하고 우물이 없는 지역이라 지역 사람들은 30분 이상을 걸어서 물을 길러 다녀야만 했습니다. 그곳에 사역하는 선교사님 조차도 0.5리터 물병 2개로 사워를 해야만 하는 열악한 지역입니다. 더러운 물을 마심으로 인해 사람들에게서 피부병이 흔하게 발견되고, 더운 열기로 인해 인해 기타 다른 질병이 흔하게 발생하는 곳입니다. 그런 그곳에 디트로이트 한인교회의 도움을 받아 여러 선교사님들이 협력하여 현지인 교회 마당에 우물을 팠습니다. 아침 5시부터 밤 11시까지 동네 사람들이 수동식으로 된 펌프를 이용해서 물을 퍼냅니다. 이제는 동네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게 되었고,아이들도 마음껏 샤워와 빨래를 할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우물을 통해 육신의 샘물을 얻고 교회를 통해 영혼의 샘물을 얻는 그곳이 바로 천국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오늘 저희가 읽었던 에스겔서 47장도 바로 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에스겔서는 대략 스물 다섯 살 나이에 나라를 잃고 포로로 끌려가 바벨론 그발 강가에 살던 에스겔(약 B.C. 593~ B.C. 571)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과 환상에 관한 성경입니다. 암울한 한 시대 동안 이스라엘과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이스라엘의 회복과 소망을 선포하게 됩니다. 그의 활동기 거의 끝자락에 받은 환상, 즉 예루살렘 새성전에 대한 환상(41-46장)을 받고 나서 시작되는 환상이 바로 오늘 저희가 읽은 말씀입니다. 오늘 저희가 읽은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에스겔이 하나님 손에 이끌리어 성전 안에 들어갔다가 제단에서 흘러 나오는 물을 보게 됩니다. 그 물은 제단 남편으로 흘렀다가 동편 문 밑으로 스며 밖으로 흘러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 물은 동쪽으로 흘러 조그만 시내를 이루더니 점점 커지고 넓어지고 깊어집니다. 결국에는 능히 헤엄칠 만하고 또한 사람이 건너지 못할 큰 강이 됩니다. 에스겔은 그 물이 흐르는 강 주변으로 과실 나무를 비롯하여 여러 나무가 심히 번성하고 강의 모든 물고기와 생물이 심히 많은 것과 강 주변이 회복되고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 본문이 2014년 새해를 새롭게 시작한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올 한 해 동안 여러분의 삶의 중심지가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물은 생명수입니다. 그것이 지나는 곳마다 살리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회복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좋은 열매 맺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말 좋은 물, 살아 있는 생수에 대한 갈급증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1절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니라” 물의 근원이 참 중요합니다. 만일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챨스강(Charles River)의 근원인 합킨톤(Hopkinton)의 에코 호수(Echo Lake)가 오염되고 썩은 물을 보낸다면 그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 병들고 죽게 될 것입니다. 2010년에 중간 상수원인 Weston에서 큰 상수도관이 터져 일주일 동안 깨끗한 물을 얻지 못해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수돗물을 틀었는데 그곳에서 흙탕물이 펑펑 쏟아져 나왔고 그 물은 샤워조차도 할 수 없는 더러운 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이 본 물의 근원은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전으로부터 나오는 물은 비록 작은 물이었지만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물이었습니다. 그 물은 하나의 지류로 흘렀지만 큰 강을 이룰 정도로 엄청난 양과 역동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새해를 맞아 새롭게 다짐하고 제대로 신앙생활을 한번 해야겠다고 하시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생명수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를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믿음과 신앙이 제자리 걸음이라면 한번쯤 생각해봐야 합니다. 여러분과 교회의 거리가 얼마만큼인지 말입니다. 어느 시에서 도로 중앙선 페인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요즘이야 모든 것을 기계식으로 하니까 상관이 없지만 당시에는 사람이 모든 것을 해야만 하던 시기입니다. 우연찮게 솜씨가 좋다고 해서 한 사람이 뽑혔습니다. 첫날에는 이 사람이 10마일을 페인트 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상관이 굉장히 좋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Wow, 하루에 10마일씩이나 칠하다니 참 대단하다.” 둘째 날은 이 사람이 7마일 정도 칠했습니다. “흠, 그런대로 괜찮군!” 셋째 날은 3마일 밖에 칠하지 못하더니 넷째 날은 1마일도 칠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너무 실망입니다. 상관이 이 사람을 불러 그 연유를 묻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이렇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예, 페인트를 담은 큰 통이 가까이 있을 때는 10마일도 아무 문제 없었지요. 그러나 매일 점점 그 통이 너무 멀리 있어 왔다 갔다 하느라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쳐 이 정도 밖에 할 수 없네요.” 그렇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어디에나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계시는 분이시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세 사람이라도 함께 모여 기도하고 예배하는 곳에 계심을 인식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성전에 계신다’는 하박국 선지자의 말씀(하박국 2장 20절)이 더 와 닿습니다. 신앙생활의 후퇴는 바로 교회 가기 싫어지는 것부터, 교회로부터 멀리 떨어지는 것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 한해는 교회를 가까이 하십시오. 교회 가기를 사모하십시오. 그곳에서 예배하면서 하나님 만나기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그 아름다운 생명수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모해야 될 그 생명수는 무엇을 말합니까? 넓게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히브리서 4장 12-13절) 이 세상의 모든 것 즉 풀이나 꽃과 같은 육체의 영광은 시들고 말라지고 종국에는 없어지기 마련입니다. 비록 천지는 없어지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세세토록 영원합니다(베드로전서 1장 24-25절). 교회에 나와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 여러분에게 큰 역사가 임할 것입니다. 그런 기대와 확신을 가지고 예배를 사모하고 하나님 만남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좁게는 그 생명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을 의미합니다. 참된 진리를 갈망하던 사마리아 여인의 목마름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복음 4장 13-14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죄가 속죄함을 받았고, 우리의 신분이 다시금 종의 신분에서 자녀의 신분으로 바뀌었습니다. 주님의 보혈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소망과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2013년까지는 우리의 모습이 실패와 좌절 가운데 있고, 아니 예수님을 알기 전까지의 우리의 모습 속에 도무지 변화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그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는 second chance, 즉 하늘로부터 값없이 내리는 은혜를 힘입어 새롭게 변화를 받을 새사람, 새생활의 가능성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7장 37-39절에서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신앙 생활을 하는 동안 힘을 얻고 역동성을 가지기 위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성령충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고 성령충만은 일어나지도 유지할 수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필그림가족 여러분! 올 한해는 교회를 사랑하시고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에 의지하여 여러분 안에서 성령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셔서 더욱 뚜렷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순전한 인도를 받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본문 말씀이 우리 삶에 주시는 도전의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생명수의 흐름에따른 변화입니다. 먼저 3절부터 5절까지 살펴보면 우리가 볼 수 있는 변화는 성전에서 흘러 나오는 물이 일천척마다 깊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처음에는 발목에 오르더니 다음에는 무릎에 차고 그 다음에는 허리에까지 오르며 마지막에는 물이 크게 넘쳐 헤엄칠 정도로 크게 깊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을 두 부분으로 적용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는 개인적인 신앙의 체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영향을 미치되 결국에는 은혜의 강물에 잠길 정도로 그런 큰 영향력이 여러분에게도 미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읽는 말씀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 이외에도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모든 종류의 사람에게 다 적용된다는 사실입니다. 문학가나 과학자, 그리고 예술가나 체육인들에게도 적용됩니다. 지식 많은 사람이나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합니다. 어쩌면지금까지 여러분이 알고 있는 성경의 내용과 그 말씀의 깊이는 지극히 작은 부분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여러분은 말씀을 들으면서 아직 여러분 몸을 잠길 정도의 하나님 말씀, 그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지도 않았는데 다 알고 경험한 것처럼, 혹은 나는 Science를 하니까, 나는 Technology를 하니까, 나는 운동을 하니까 성경이 상관없다고 말씀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을 감찰하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영역, 즉 우리의 모든 지정의 부분을 주관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계획하신 1%도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체험하고 있는 것들은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지극히 희미한 부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 지식과 연구와 노력은 어느 정도 통계적으로 가능한 수치적인 진보를 이룬다면, 하나님 안에 있는 지혜와 지식은 그 한계를 능히 뛰어 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믿음의 힘이라고 부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를 통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에베소서 3장 17-19절)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이런 놀라운 역사를 창일한 은혜의 바다에서 마음껏 헤엄치는 것처럼 누리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또한 생명수의 흐름에 따른 변화는 우리 개개인의 평생의 믿음의 여정이 성장하고 풍성해지며 성숙해지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과 공동체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살아있는 복음의 말씀은 그것이 시작되었을 때는 지극히 미미했습니다. 마치 발목에 찬 물은 겉보기에도 하찮고 별로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무릎을 지나 허리까지 오르고 우리의 몸이 잠길 정도라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넓고 깊게 흐르는 거대한 강물은 바위를 쪼개고 산을 부술만한 엄청난 힘과 수많은 종류의 각종 생명체를 담아낼 생명의 능력이 그곳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의 기독교는 겨우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성령충만을 받고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급기야는 로마와 전세계를 덮어버릴 큰 힘과 역사를 바꾸는 역동적인 강물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큰 기업가나 좋은 가문들을 볼 때에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합니다. 그들도 역시 모두가 출발점은 별 볼일 없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복음에 붙들린바 되었을 때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워너메이커(John Wanamaker), 록펠러(John D. Rockefeller), 링컨(Abraham Lincoln), 마틴 루터 킹 (Martin Luther King Jr.) 같은 사람들은 모두 복음을 통해 그들이 변화되었거나 그들 부모에게서 시작된 복음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의 가문은 개인을 뛰어넘어 미국이라는 국가적 신앙적 공동체를 떠받드는 더욱 귀한 가문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여기서 한번 질문해 봐야 합니다. 우리 가족에게 복음이 들어왔는데, 혹은 우리 중에도 벌써 예수 믿은 지 4대 째를 넘어가고 있는데 어떤 복음의 변화와 능력이 있는지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자녀들에게 후손들에게 정말 좋은 것을 물려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우리는 과연 무엇을 남겨주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것들은 어떤 영향력을 끼칠지 말입니다. 진실로 우리 가족과 후손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면 전해질수록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와 큰 생명의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말씀으로 말미암아 우리 공동체 안에 생겨난 작은 믿음은 비록 작아 보이지만 언젠가는 큰 강을 이루고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모든 생명체를 담을 만한 큰 그릇의 공동체가 될 줄로 확신합니다.
분명 이 생명수 강이 흐르는 곳마다 회복과 생명으로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지라.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감으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또 이 강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 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이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에스겔 47장 8~12절). 이 시간 성전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그 생명수를 몸이 잠길 정도로 경험하기를 소원하는 우리 모두에게, 우리의 가족과 자녀에게, 그리고 우리 교회와 이 나라 위에 이런 회복과 가슴 벅찬 변화의 풍성함이 올 한해 동안 이어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