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해 주일 감사 예배
거룩한 예배자, 행복한 예배자! Holy Worshiper, Happy Worshiper!
성경본문: 이사야 43장 15-21절
할렐루야! 2014년 새로운 한 해가 밝았습니다. 올 한 해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 가정에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매 주일마다 교회에 모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모입니다. 주일이 한 주간의 시작이면 그 주일의 중심이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통해 한 주일을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예배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예배를 잘 드리고 말씀을 통해 은혜 받고 찬양을 통해 힘을 얻고 돌아가면 한 주간의 삶이 행복합니다. 그러나 예배에서부터 혼란스러우면 한 주간의 삶이 정신 없고 힘이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의 중심이 되는 예배에 집중하기 위해 올 한해 우리 교회 표어를 “거룩한 예배자, 행복한 예배자!”로 정했습니다. 이 표어가 여러분 각자의 삶에 그대로 적용되기를 원합니다. 올 한 해 새로운 결심으로 나는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찾으시는 거룩한 예배자, 언제나 예배 드릴 때마다 행복한 예배자가 되시기를 작정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으로 이 신앙을 표현하실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예배란 무엇입니까? 단순히 글자 그대로 보면 예를 갖추어 절을 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신앙의 대상에게 존경과 숭앙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Worship”입니다. 값어치를 나타내는 ‘Worth’라는 말과 태도 마음을 의미하는 ‘ship’이라는 두 단어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결국 우리가 드리는 예배란 우리의 절대 가치가 되는 하나님께 가장 아름다운 마음과 태도로 최고의 존경과 경배를 드리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 드리기 전에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과 준비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배를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진정한 인격적 교류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감동이요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주시는 생명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살아있는 예배, 감동 있는 예배. 뜨거운 예배를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부터 예배 드릴 때마다 우리 모두에게 그런 은혜의 체험이 분명하게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사야 43장 15절부터 21절까지 읽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유다 백성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별로 좋은 상황이 아닙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그들의 왕과 함께 이역만리 바벨론으로 끌려와 포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포로 생활을 한지 꽤 오랩니다. 유대인들끼리 그발 강가에 모여 살지만, 그들에게는 하나님도 신앙도 그리고 찬송도 잊어 버린지 꽤 오래 됐습니다. 기쁨 보다는 삶의 고역이, 소망보다는 이제 그곳 삶에 익숙해 버린 자녀들을 보며 타향에서의 낯설음이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마치 삶을 살고 있으되 이제 막 눈이 내릴 것 같은 희뿌연 구름 아래 핏기 없이 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설상가상으로 그래도 함께 모인 그들을 보며 바벨론 사람들이 조롱합니다. “너의 하나님은 어디 있느냐?” “우리를 위해 그 하프 한번 켜보며 노래를 불러라!” 시편 137편이 이런 상황을 아주 잘 그려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찐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찌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찐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찌로다.
예배 하러 오신 우리에게도 이런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안의 그 사모하는 마음을 잊어 버릴정도로 주어진 현실이 어렵고 힘도 나지 않아 교회 가는 것이 고역이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고통 때문에 염려와 근심 때문에 하나님은 고사하고 찬송과 기도를 드려도 예배에 집중이 되지 않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의 참여자가가 아닌 예배의 방관자로 한 시간 동안 앉아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새해 첫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작정했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예배자가 되기로 작정했습니다. 우리의 상황과 현실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여러분이 고통 가운데서, 힘듦 가운데서, 염려 가운데서 영원히 거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행복하고 기쁨 가운데, 즐거움 가운데 거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당신과 멀리 떨어져 외롭고 낯선 이방인의 삶을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 안에 거하여 당신의 보호 아래 안전하고 든든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힌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시편 40편 1-2절)
오늘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예배의 회복과 그 시작이 무엇인지를 저희에게 알려 줍니다. 이사야 43장 15절 말씀에,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 (I am the LORD, your Holy One, Israel’s Creator, your king.)”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배의 시작은 예배의 중심이 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말씀의 선포를 통해 우리가 가장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우리의 주(主)이시며, 왕 되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피조물로서 우리가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누가 감히 얼굴을 들고 서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누가 우리의 창조주 되신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누가 나아갈 수 있단 말입니까? 사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을 본 자마다, 심지어 그 천사를 본 자마다 죽었는데 우리는 어떤 자격으로 그 크신 하나님을 뵈올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큰 대제사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재자가 되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브리서 4장 16절)고 말씀합니다. 잊어버렸던 하나님께서, 그들을 멀리 떠나셨던 건만 같았던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의)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 예배를 통해 나와 직접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시는 나의 하나님이 깨달아져야만 그 예배가 참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이 예배하는 우리 개개인에게 하나님의 임재로 경험 되어질 때 우리가 거룩한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모든 예배가 사람을 즐겁게 하고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 한해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거룩이 예배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경험되어지고, 그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갈망하는 거룩한 예배자가 다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러면 말씀을 통해 예배가 회복되면, 즉 거룩한 예배자가 되면 우리 가운데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요? 이사야 선지자는 계속해서 18절과 19절에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리.” 거룩한 예배자의 삶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예배자의 삶 속에 개입하십니다. 더 이상 역사의 방관자가 아니라 이제는 역사의 주인공이 되게 만드십니다. 즉 내 삶에 새로운 일들을 행하신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 만으로도 가슴 벅차지 않습니까? 과거의 상처도 고통도 힘듦도 잊어 버리게 만드실 놀라운 일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 주십니다. 본문 가운데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낸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먹고 살기는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 지를 몰라, 그 길을 몰라 황량한 광야에서 배회하다가 인생을 마치고 있지 않습니까? 인생의 의미를 몰라 메마른 사막처럼 타는 갈증으로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여러분에게 예수님은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장 6절)”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한복음 7장 37-38절)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과 교훈이 우리 삶에 다가올 때 일어나는 변화의 신앙 사건을 통해 우리 안에 지독히도 반복되고 있는 과거의 굴레와 죄의 옛모습을 벗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 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장 17절)
지금 바벨론에 있는 이들에게 새로운 일이란 무엇입니까? 바벨론에서 노예처럼, 이방인처럼 살아가는 그들에게 고향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 다시 만난 가족들과 함께 포도원을 짓고 양을 치며 해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새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지금 현재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장 13절) 실제로 그들은 70년간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 때 그들이 꿈에 그리던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룩한 예배자가 된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반드시 새로운 일들을 행하실 것입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위해 길을 만드시고 사막에 강을 내실 것입니다. 각자 각자에게 올 한해 동안 하나님은 분명하게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큰 일들을 행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여러분에게 임할 새로운 일들을 기대해 보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거룩한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런 일들을 역사하실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행복이 여러분에게 넘치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새로운 일들을 통해서 행복한 예배자가 된 우리는 어떤 사람들로 바뀌게 될까요? 오늘 본문 21절이 그 대답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예배의 회복과 감동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다시 찬양하게 하십니다. 우리 안에, 우리 가정 안에, 우리 교회 안에 잊어버렸던 찬양과 감사가 다시 흐르게 합니다. 입술을 열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다시금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도록 내어 맡기게 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게 됩니다. 작은 천국이 이곳에서부터 이루어 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 한해는 예배에 성공합시다. 정말 감격 있는 예배, 살아 있는 예배를 위해 기도합시다. 매 예배마다 준비되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갑시다.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예배를 드리도록 합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경험하며, 여러분에게 한 해 동안 말씀으로 약속하신 놀랍고 새로운 일들이 펼쳐지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년말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런 새로운 일들을 행하셨노라고 간증하도록 합시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그 놀라운 일들로 인하여 여러분 모두에게 기쁨과 감사의 올 한해 동안 찬양이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거룩한 예배자, 행복한 예배자! Holy Worshiper, Happy Worshiper!
성경본문: 이사야 43장 15-21절
할렐루야! 2014년 새로운 한 해가 밝았습니다. 올 한 해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 가정에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매 주일마다 교회에 모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모입니다. 주일이 한 주간의 시작이면 그 주일의 중심이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통해 한 주일을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예배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예배를 잘 드리고 말씀을 통해 은혜 받고 찬양을 통해 힘을 얻고 돌아가면 한 주간의 삶이 행복합니다. 그러나 예배에서부터 혼란스러우면 한 주간의 삶이 정신 없고 힘이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의 중심이 되는 예배에 집중하기 위해 올 한해 우리 교회 표어를 “거룩한 예배자, 행복한 예배자!”로 정했습니다. 이 표어가 여러분 각자의 삶에 그대로 적용되기를 원합니다. 올 한 해 새로운 결심으로 나는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찾으시는 거룩한 예배자, 언제나 예배 드릴 때마다 행복한 예배자가 되시기를 작정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으로 이 신앙을 표현하실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예배란 무엇입니까? 단순히 글자 그대로 보면 예를 갖추어 절을 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신앙의 대상에게 존경과 숭앙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Worship”입니다. 값어치를 나타내는 ‘Worth’라는 말과 태도 마음을 의미하는 ‘ship’이라는 두 단어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결국 우리가 드리는 예배란 우리의 절대 가치가 되는 하나님께 가장 아름다운 마음과 태도로 최고의 존경과 경배를 드리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 드리기 전에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과 준비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배를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진정한 인격적 교류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감동이요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주시는 생명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살아있는 예배, 감동 있는 예배. 뜨거운 예배를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부터 예배 드릴 때마다 우리 모두에게 그런 은혜의 체험이 분명하게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사야 43장 15절부터 21절까지 읽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유다 백성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별로 좋은 상황이 아닙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그들의 왕과 함께 이역만리 바벨론으로 끌려와 포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포로 생활을 한지 꽤 오랩니다. 유대인들끼리 그발 강가에 모여 살지만, 그들에게는 하나님도 신앙도 그리고 찬송도 잊어 버린지 꽤 오래 됐습니다. 기쁨 보다는 삶의 고역이, 소망보다는 이제 그곳 삶에 익숙해 버린 자녀들을 보며 타향에서의 낯설음이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마치 삶을 살고 있으되 이제 막 눈이 내릴 것 같은 희뿌연 구름 아래 핏기 없이 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설상가상으로 그래도 함께 모인 그들을 보며 바벨론 사람들이 조롱합니다. “너의 하나님은 어디 있느냐?” “우리를 위해 그 하프 한번 켜보며 노래를 불러라!” 시편 137편이 이런 상황을 아주 잘 그려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찐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찌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찐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찌로다.
예배 하러 오신 우리에게도 이런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안의 그 사모하는 마음을 잊어 버릴정도로 주어진 현실이 어렵고 힘도 나지 않아 교회 가는 것이 고역이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고통 때문에 염려와 근심 때문에 하나님은 고사하고 찬송과 기도를 드려도 예배에 집중이 되지 않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의 참여자가가 아닌 예배의 방관자로 한 시간 동안 앉아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새해 첫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작정했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예배자가 되기로 작정했습니다. 우리의 상황과 현실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여러분이 고통 가운데서, 힘듦 가운데서, 염려 가운데서 영원히 거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행복하고 기쁨 가운데, 즐거움 가운데 거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당신과 멀리 떨어져 외롭고 낯선 이방인의 삶을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오히려 하나님 안에 거하여 당신의 보호 아래 안전하고 든든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힌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시편 40편 1-2절)
오늘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예배의 회복과 그 시작이 무엇인지를 저희에게 알려 줍니다. 이사야 43장 15절 말씀에,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 (I am the LORD, your Holy One, Israel’s Creator, your king.)”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배의 시작은 예배의 중심이 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말씀의 선포를 통해 우리가 가장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우리의 주(主)이시며, 왕 되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피조물로서 우리가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누가 감히 얼굴을 들고 서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누가 우리의 창조주 되신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누가 나아갈 수 있단 말입니까? 사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을 본 자마다, 심지어 그 천사를 본 자마다 죽었는데 우리는 어떤 자격으로 그 크신 하나님을 뵈올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큰 대제사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재자가 되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브리서 4장 16절)고 말씀합니다. 잊어버렸던 하나님께서, 그들을 멀리 떠나셨던 건만 같았던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의)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 예배를 통해 나와 직접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시는 나의 하나님이 깨달아져야만 그 예배가 참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이 예배하는 우리 개개인에게 하나님의 임재로 경험 되어질 때 우리가 거룩한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모든 예배가 사람을 즐겁게 하고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 한해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거룩이 예배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경험되어지고, 그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갈망하는 거룩한 예배자가 다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러면 말씀을 통해 예배가 회복되면, 즉 거룩한 예배자가 되면 우리 가운데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요? 이사야 선지자는 계속해서 18절과 19절에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리.” 거룩한 예배자의 삶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예배자의 삶 속에 개입하십니다. 더 이상 역사의 방관자가 아니라 이제는 역사의 주인공이 되게 만드십니다. 즉 내 삶에 새로운 일들을 행하신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 만으로도 가슴 벅차지 않습니까? 과거의 상처도 고통도 힘듦도 잊어 버리게 만드실 놀라운 일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 주십니다. 본문 가운데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낸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먹고 살기는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 지를 몰라, 그 길을 몰라 황량한 광야에서 배회하다가 인생을 마치고 있지 않습니까? 인생의 의미를 몰라 메마른 사막처럼 타는 갈증으로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여러분에게 예수님은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장 6절)”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한복음 7장 37-38절)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과 교훈이 우리 삶에 다가올 때 일어나는 변화의 신앙 사건을 통해 우리 안에 지독히도 반복되고 있는 과거의 굴레와 죄의 옛모습을 벗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 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장 17절)
지금 바벨론에 있는 이들에게 새로운 일이란 무엇입니까? 바벨론에서 노예처럼, 이방인처럼 살아가는 그들에게 고향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 다시 만난 가족들과 함께 포도원을 짓고 양을 치며 해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새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지금 현재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장 13절) 실제로 그들은 70년간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 때 그들이 꿈에 그리던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룩한 예배자가 된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반드시 새로운 일들을 행하실 것입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위해 길을 만드시고 사막에 강을 내실 것입니다. 각자 각자에게 올 한해 동안 하나님은 분명하게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큰 일들을 행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여러분에게 임할 새로운 일들을 기대해 보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거룩한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런 일들을 역사하실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행복이 여러분에게 넘치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새로운 일들을 통해서 행복한 예배자가 된 우리는 어떤 사람들로 바뀌게 될까요? 오늘 본문 21절이 그 대답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예배의 회복과 감동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다시 찬양하게 하십니다. 우리 안에, 우리 가정 안에, 우리 교회 안에 잊어버렸던 찬양과 감사가 다시 흐르게 합니다. 입술을 열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다시금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도록 내어 맡기게 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게 됩니다. 작은 천국이 이곳에서부터 이루어 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 한해는 예배에 성공합시다. 정말 감격 있는 예배, 살아 있는 예배를 위해 기도합시다. 매 예배마다 준비되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갑시다.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예배를 드리도록 합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경험하며, 여러분에게 한 해 동안 말씀으로 약속하신 놀랍고 새로운 일들이 펼쳐지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년말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런 새로운 일들을 행하셨노라고 간증하도록 합시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그 놀라운 일들로 인하여 여러분 모두에게 기쁨과 감사의 올 한해 동안 찬양이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