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4주년 기념 주일
반석 위에 세워지는 교회 The Church Being Built on the Rock
성경본문: 히브리서 11장 1-2, 6절
저희 교회가 창립된지 벌써 4주년이 되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2009년 8월 2일에 보스톤 필그림교회(The Korean Pilgrim Church of Boston)로 개척예배를 드렸으니 4년 5개월이 된 셈입니다. 그동안 저희 교회를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고 여러 힘든 부분에도 불구하고 함께 기도해 주시고 교회를 세워간 많은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교회를 시작할 즈음에는 고민이 몇가지 있었습니다. 첫번째 고민은 이 지역에 또 하나의 교회가 생기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고민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보스톤에 사는 유학생과 교민들 수에 비해 교회가 너무 많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자꾸만 저를 괴롭혔습니다. 또한 개척하는 타이밍이 문제였습니다. 어려운 전임 교회 사정을 보지 않고 그냥 사임하면서 개척하는 것이 마치 교회를 쪼개 나간다는 오해였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 사정을 잘 모르던 다른 목사님들로부터 오해를 받고 싸늘한 시선을 한동안 받아야 했던 힘든 시기도 있었습니다. 이 고민은 우리 교회의 존재의 필요성과 특수성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베드로를 만나 승천하시기 전 개인적으로 나눈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사랑한 그 고백만큼 주님께서 맡겨주신 양을 먹이고 치라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게 주신 확신이 있었습니다. 바로 유리하는 양들이 있는 곳에 필요한 사람은 바로 목자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신앙이 흔들리고 기도가 나오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교회와 같은 믿음의 식구들로부터 상처입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다시금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말씀으로 싸매고 인도해야 할 책임이 저에게 있다라는 강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또한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된 주님의 관심입니다. 주님의 관심은 당신의 수제자인 베드로 한 사람을 뛰어 넘습니다. 주님의 관심은 갈릴리에 남은 제자들을 뛰어 넘습니다. 오히려 말씀을 듣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던 이스라엘의 연약한 양들에게 그리고 장차 성령을 통해 하나님께로 돌아올 이방인 양들에게까지 확대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관심은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이어졌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담대히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던 모습에서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던 베드로의 모습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어떤 면으로 보기에 우리 교회가 다른 이민 교회들과 비슷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시각이 이곳 보스톤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를 향하여 뻗어나갈 하나님 나라의 허브(Hub)가 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은 후에 이 지역에서 개척해서 20여년간을 목회하고 계시던 어느 목사님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대화할 때 분명히 더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암요, 보스톤에 교회가 더 많이 생겨야 합니다. 이 지역에는 그래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그리고 믿음 생활을 중단하신 분들을 위해, 그리고 앞으로 이곳을 통해 전세계로 뻗어나갈 복음의 사람들을 위해 교회가 더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미래 시대를 위한 교육과 복음을 통하여 세계 선교를 중요시하게 된 데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두번째 고민은 현실적인 고민이었습니다. 교회를 세우기는 했는데 누가 교회를 함께 세워 나가고 이무거운 책임을 같이 할 수 있을까, 과연 얼마나 모일까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첫 개척 예배 때는 30여명 정도가 모였습니다. 두번째 예배 때는 MIT 기숙사 지하 친교실에서 모였는데 반으로 줄어 열 다섯 명 정도 모였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모임 때 장은자 집사님 댁에서 모였는데 한국에서 방문하신 이경은 집사님의 어머님을 포함하여 8명 정도 모였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긴 했는데 예배하는 사람들 중에 함께 교회를 세워 나갈 주체적인 사람들이 도대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개척하면 사람들이 듣고 구름같이 몰려오리라는 환상은 갖지 않았지만 다음 예배를 드리면서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겠노라고 큰 소리치셨던 분들이 그냥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여간 기운이 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더불어 예배 드릴 교회 처소를 얻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여름에 개척했으니 날씨만 좋으면 야외에서 예배 드려도 상관없지만, 개학 시즌이 다가오니까 성도님들이 자꾸 어디에서 예배 드리는지 물어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시간을 저와 저의 집사람에게 그리고 이제 막 시작한 교인들에게 은혜와 기도의 시간으로 주셨습니다. 장은자 집사님 댁에서 8명이 주일 예배를 드리고 집에 돌아와서 보니 그렇게 마음이 편안합니다. “이제 됐다! 누가 함께 하는지 알았다.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이끄시고 모든 것을 예비해 주시겠구나.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만 믿고 나아가겠습니다” 이날 저녁 이후로는 사람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신 모임이구나라는 강한 확신 가운데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아갔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개척하고 나서 한 3주 동안 저와 저희 집사람은 예배 처소를 얻기 위해 일 끝나고 자정이 넘도록 알링톤(arlington)부터 캠브리지(Cambridge), 보스톤(Boston), 벨몬트(Belmont), 워터타운(Watertown), 그리고 뉴튼(Newton)까지 세워진 교회들을 찾아 다니고 그곳에 편지를 보내야만 했습니다. 거절의 편지도, 매몰찬 무관심의 모습도 그리고 마냥 기다려야만 하는 기다림의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기대를 뛰어넘어 크고 멋진 교회를 예비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모든 일은 제가 끌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의 주인이심을 다시 한번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눈물로 간절히 기도하던 초기 멤버들과 개척교회에 대한 그분들의 열정을 다시 한번 기억하면서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은 결국 그 후에 귀한 이종영 권사님, 문경자 권사님, 문춘희 권사님과 공병근 장로님을 보내주셨습니다. 또 여러 일꾼들을 보내주셨습니다. 필요할 때마다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하나가 되어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교회, 세상을 향한 복의 통로가 되는 교회가 되고자 그 다음해 2010년 1월 셋째 주일에 정식으로 창립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을 “반석 위에 세워지는 교회”라고 붙였습니다. 창립 4주년을 맞은 우리 교회가 더욱더 반석 위에 세워지길 기도합니다. 우리는 반석과 관련된 성경말씀을 몇 군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마무리하면서 마태복음 7장에서 한가지 비유를 드십니다. 즉 반석 위에 세운 집과 모래 위에 세운 집에 대한 비유입니다. 둘 다 집을 지었고, 지어진 집은 평상시에는 아무 문제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며 창수가 날 때입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그냥 주저 않습니다. 그냥 무너져 버리고 비바람에 그 큰 파도에 맥없이 쓸려 갑니다. 세워지긴 했으나 의미 없는 세워짐 입니다. 겉은 멀쩡하고 화려하나 든든히 세워지지 않은 기초가 부실한 집입니다. 반면에 반석 위에 세워진 집은 힘이 들어도 땅을 깊이 파고 바위를 깍아 내고 그 위에 기초를 세웠습니다. 어쩌면 더 조야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정작 비바람 앞에, 큰 창수 앞에 끄떡도 없습니다. 많은 이민교회가 부침이 있었습니다. 몇 십 주년 역사를 자랑하는 교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디에 교회가 세워지고 어떻게 성장해 가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의 기초는 어디입니까? 모래 위 입니까? 아니면 반석입니까? 모두들 반석 위에 지어진 교회를 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석 위에 세워진다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마태복음 16장에는 예수님이 누구신가라는 질문을 제자들에게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람마다 어떤 사람은 엘리야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세례요한 이라고 말합니다. 그 때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16절) 예수님은 이 대답을 아주 흐믓하게 생각하셨습니다. 베드로를 칭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17-19절) 예수님께서는 이 반석 위에 예수님의 교회를 세우겠다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이름은 반석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라는 말 속에는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라는 말입니다. 캐톨릭교회에서 로마 교회의 수위권을 주장하는 이유도 바로 베드로가 주님의 수제자 일뿐 아니라 바로 그 위에 교회를 세운다고 했으니 그의 순교지인 로마 교회가 바로 주님의 최고 교회라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석은 문자 그대로 베드로를 의미할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입니다. 즉 베드로처럼 누구나 그러한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들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운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교회의 참된 터는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머릿돌이 되신다라는 의미입니다. 머릿될 되신 예수님은 우리의 주시요 그리스도이십니다. 주(LORD, kurios)라는 말속에는 최고의 절대 권위, 가장 처음이신 분, 다른 어떤 것보다 더 귀한 최고의 것, 창조의 주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원래 이 말이 쓰였을 때는 종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주인을 칭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이 헬라 문화권에서 대문자로 쓰이고 나서 부터는 로마 황제인 시저(Ceasar)를 일컫는 말로 쓰였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주관하고 우리가 따라야 할 주인이십니다라는 고백은 그 당시의 통치권자인 시저에 대한 불충성을 의미했기에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게 되었던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예수님만이 참된 주요 모든 것의 우위요 유일한 참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동일한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만이 우리의 왕 되시고 우리 교회의 주인 되심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구원자라는 말입니다. 오직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분은 예수님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구약의 메시야처럼 기름부음 받은 자로서 우리를 위해 왕처럼, 선지자처럼, 대제사장처럼 그 역할을 감당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다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신앙고백이 끊임없이 이어지지 않는 한 그 교회는 모래 위에 세운 교회와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입술 가운데서 매일 매 순간 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흘러나오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매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이끄시고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실 수 있도록, 세상은 흔들리고 사람들은 변하지만 우리의 굳건한 믿음의 신앙고백 위에 필그림교회가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히브리서 11장 1,2절과 6절 말씀을 읽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우리에게는 바라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가족들이 잘 되기를 원합니다.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가기를 원합니다. 사업이 잘 되기를 원합니다. 좋은 직장으로 인도 되어지기를 기도합니다. 혹은 스스로의 목적을 위해 믿음을 갖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요한 삼서의 말씀처럼 “내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소원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도 복을 받고 하나님 나라에 가서도 복을 받길 원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양적으로 성장하고 사회경제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좋아하고 그렇게 꿈꿀지도 모르겠습니다. 교회가 커져서 마음껏 2세들을 양육하고, 지역에 큰 교회로 소문 났으면 하는 바램도 있습니다. 물론 그런 바람들이 전부 잘못됐다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저 이런 모습은 갓난 아이와 같은 엷은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성숙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업그레이드 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한 단계 도약하려 한다면 다시금 우리 안에 오직 예수 정신을 심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그리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실 때, 그분의 복음과 생명일 때 우리의 신앙과 교회는 건강하고 튼튼한 반석 위에 세운 교회가 될 것이라고 굳게 확신합니다. 예수가 빠진, 오직 예수님 한 분 만으로 만족 못하는 우리들의 신앙이 된다면 다시금 우리는 믿음 생활을 잘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기초한 믿음을 가지시고 하나님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 지니라.”(히브리서 11장 6절)라는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고, 우리를 위해 하나님 우편에서 열심히 중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저희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신다는 사실을 확증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보스톤 필그림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인성과 연합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의 원리를 믿고 희생의 진리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삶에 녹아지고 우리 인생의(신앙의) 전부이기를 소원합니다. 때론 힘들고 우리의 바라는 모든 것들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도, 혹은 보지 못하는 증거들이 아니어도 예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고 기뻐하길 원합니다. 우리 믿음의 반석 되신 주님께 기대어 오직 하나님을 순전하게 의지하고 우리와 우리 교회를 향한 이 마지막 시대의 사명을 감당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도하심을 온전히 신뢰함으로 오직 우리 안에 반석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타나는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는 그런 우리 교회가 되도록 앞으로도 계속 노력하는 저와 성도님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반석 위에 세워지는 교회 The Church Being Built on the Rock
성경본문: 히브리서 11장 1-2, 6절
저희 교회가 창립된지 벌써 4주년이 되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2009년 8월 2일에 보스톤 필그림교회(The Korean Pilgrim Church of Boston)로 개척예배를 드렸으니 4년 5개월이 된 셈입니다. 그동안 저희 교회를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고 여러 힘든 부분에도 불구하고 함께 기도해 주시고 교회를 세워간 많은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교회를 시작할 즈음에는 고민이 몇가지 있었습니다. 첫번째 고민은 이 지역에 또 하나의 교회가 생기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고민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보스톤에 사는 유학생과 교민들 수에 비해 교회가 너무 많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자꾸만 저를 괴롭혔습니다. 또한 개척하는 타이밍이 문제였습니다. 어려운 전임 교회 사정을 보지 않고 그냥 사임하면서 개척하는 것이 마치 교회를 쪼개 나간다는 오해였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 사정을 잘 모르던 다른 목사님들로부터 오해를 받고 싸늘한 시선을 한동안 받아야 했던 힘든 시기도 있었습니다. 이 고민은 우리 교회의 존재의 필요성과 특수성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베드로를 만나 승천하시기 전 개인적으로 나눈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사랑한 그 고백만큼 주님께서 맡겨주신 양을 먹이고 치라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게 주신 확신이 있었습니다. 바로 유리하는 양들이 있는 곳에 필요한 사람은 바로 목자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신앙이 흔들리고 기도가 나오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교회와 같은 믿음의 식구들로부터 상처입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다시금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말씀으로 싸매고 인도해야 할 책임이 저에게 있다라는 강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또한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된 주님의 관심입니다. 주님의 관심은 당신의 수제자인 베드로 한 사람을 뛰어 넘습니다. 주님의 관심은 갈릴리에 남은 제자들을 뛰어 넘습니다. 오히려 말씀을 듣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던 이스라엘의 연약한 양들에게 그리고 장차 성령을 통해 하나님께로 돌아올 이방인 양들에게까지 확대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관심은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이어졌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담대히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던 모습에서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던 베드로의 모습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어떤 면으로 보기에 우리 교회가 다른 이민 교회들과 비슷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시각이 이곳 보스톤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를 향하여 뻗어나갈 하나님 나라의 허브(Hub)가 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은 후에 이 지역에서 개척해서 20여년간을 목회하고 계시던 어느 목사님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대화할 때 분명히 더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암요, 보스톤에 교회가 더 많이 생겨야 합니다. 이 지역에는 그래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그리고 믿음 생활을 중단하신 분들을 위해, 그리고 앞으로 이곳을 통해 전세계로 뻗어나갈 복음의 사람들을 위해 교회가 더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미래 시대를 위한 교육과 복음을 통하여 세계 선교를 중요시하게 된 데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두번째 고민은 현실적인 고민이었습니다. 교회를 세우기는 했는데 누가 교회를 함께 세워 나가고 이무거운 책임을 같이 할 수 있을까, 과연 얼마나 모일까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첫 개척 예배 때는 30여명 정도가 모였습니다. 두번째 예배 때는 MIT 기숙사 지하 친교실에서 모였는데 반으로 줄어 열 다섯 명 정도 모였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모임 때 장은자 집사님 댁에서 모였는데 한국에서 방문하신 이경은 집사님의 어머님을 포함하여 8명 정도 모였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긴 했는데 예배하는 사람들 중에 함께 교회를 세워 나갈 주체적인 사람들이 도대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개척하면 사람들이 듣고 구름같이 몰려오리라는 환상은 갖지 않았지만 다음 예배를 드리면서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겠노라고 큰 소리치셨던 분들이 그냥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여간 기운이 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더불어 예배 드릴 교회 처소를 얻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여름에 개척했으니 날씨만 좋으면 야외에서 예배 드려도 상관없지만, 개학 시즌이 다가오니까 성도님들이 자꾸 어디에서 예배 드리는지 물어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시간을 저와 저의 집사람에게 그리고 이제 막 시작한 교인들에게 은혜와 기도의 시간으로 주셨습니다. 장은자 집사님 댁에서 8명이 주일 예배를 드리고 집에 돌아와서 보니 그렇게 마음이 편안합니다. “이제 됐다! 누가 함께 하는지 알았다.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이끄시고 모든 것을 예비해 주시겠구나.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만 믿고 나아가겠습니다” 이날 저녁 이후로는 사람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신 모임이구나라는 강한 확신 가운데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아갔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개척하고 나서 한 3주 동안 저와 저희 집사람은 예배 처소를 얻기 위해 일 끝나고 자정이 넘도록 알링톤(arlington)부터 캠브리지(Cambridge), 보스톤(Boston), 벨몬트(Belmont), 워터타운(Watertown), 그리고 뉴튼(Newton)까지 세워진 교회들을 찾아 다니고 그곳에 편지를 보내야만 했습니다. 거절의 편지도, 매몰찬 무관심의 모습도 그리고 마냥 기다려야만 하는 기다림의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기대를 뛰어넘어 크고 멋진 교회를 예비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모든 일은 제가 끌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의 주인이심을 다시 한번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눈물로 간절히 기도하던 초기 멤버들과 개척교회에 대한 그분들의 열정을 다시 한번 기억하면서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은 결국 그 후에 귀한 이종영 권사님, 문경자 권사님, 문춘희 권사님과 공병근 장로님을 보내주셨습니다. 또 여러 일꾼들을 보내주셨습니다. 필요할 때마다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하나가 되어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교회, 세상을 향한 복의 통로가 되는 교회가 되고자 그 다음해 2010년 1월 셋째 주일에 정식으로 창립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을 “반석 위에 세워지는 교회”라고 붙였습니다. 창립 4주년을 맞은 우리 교회가 더욱더 반석 위에 세워지길 기도합니다. 우리는 반석과 관련된 성경말씀을 몇 군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산상수훈을 마무리하면서 마태복음 7장에서 한가지 비유를 드십니다. 즉 반석 위에 세운 집과 모래 위에 세운 집에 대한 비유입니다. 둘 다 집을 지었고, 지어진 집은 평상시에는 아무 문제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며 창수가 날 때입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그냥 주저 않습니다. 그냥 무너져 버리고 비바람에 그 큰 파도에 맥없이 쓸려 갑니다. 세워지긴 했으나 의미 없는 세워짐 입니다. 겉은 멀쩡하고 화려하나 든든히 세워지지 않은 기초가 부실한 집입니다. 반면에 반석 위에 세워진 집은 힘이 들어도 땅을 깊이 파고 바위를 깍아 내고 그 위에 기초를 세웠습니다. 어쩌면 더 조야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정작 비바람 앞에, 큰 창수 앞에 끄떡도 없습니다. 많은 이민교회가 부침이 있었습니다. 몇 십 주년 역사를 자랑하는 교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디에 교회가 세워지고 어떻게 성장해 가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의 기초는 어디입니까? 모래 위 입니까? 아니면 반석입니까? 모두들 반석 위에 지어진 교회를 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석 위에 세워진다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마태복음 16장에는 예수님이 누구신가라는 질문을 제자들에게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람마다 어떤 사람은 엘리야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세례요한 이라고 말합니다. 그 때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16절) 예수님은 이 대답을 아주 흐믓하게 생각하셨습니다. 베드로를 칭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17-19절) 예수님께서는 이 반석 위에 예수님의 교회를 세우겠다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이름은 반석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라는 말 속에는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라는 말입니다. 캐톨릭교회에서 로마 교회의 수위권을 주장하는 이유도 바로 베드로가 주님의 수제자 일뿐 아니라 바로 그 위에 교회를 세운다고 했으니 그의 순교지인 로마 교회가 바로 주님의 최고 교회라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석은 문자 그대로 베드로를 의미할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입니다. 즉 베드로처럼 누구나 그러한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들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운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교회의 참된 터는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머릿돌이 되신다라는 의미입니다. 머릿될 되신 예수님은 우리의 주시요 그리스도이십니다. 주(LORD, kurios)라는 말속에는 최고의 절대 권위, 가장 처음이신 분, 다른 어떤 것보다 더 귀한 최고의 것, 창조의 주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원래 이 말이 쓰였을 때는 종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주인을 칭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이 헬라 문화권에서 대문자로 쓰이고 나서 부터는 로마 황제인 시저(Ceasar)를 일컫는 말로 쓰였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주관하고 우리가 따라야 할 주인이십니다라는 고백은 그 당시의 통치권자인 시저에 대한 불충성을 의미했기에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게 되었던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예수님만이 참된 주요 모든 것의 우위요 유일한 참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동일한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만이 우리의 왕 되시고 우리 교회의 주인 되심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구원자라는 말입니다. 오직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분은 예수님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구약의 메시야처럼 기름부음 받은 자로서 우리를 위해 왕처럼, 선지자처럼, 대제사장처럼 그 역할을 감당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다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신앙고백이 끊임없이 이어지지 않는 한 그 교회는 모래 위에 세운 교회와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입술 가운데서 매일 매 순간 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흘러나오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매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이끄시고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실 수 있도록, 세상은 흔들리고 사람들은 변하지만 우리의 굳건한 믿음의 신앙고백 위에 필그림교회가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히브리서 11장 1,2절과 6절 말씀을 읽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우리에게는 바라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가족들이 잘 되기를 원합니다.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가기를 원합니다. 사업이 잘 되기를 원합니다. 좋은 직장으로 인도 되어지기를 기도합니다. 혹은 스스로의 목적을 위해 믿음을 갖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요한 삼서의 말씀처럼 “내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소원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도 복을 받고 하나님 나라에 가서도 복을 받길 원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양적으로 성장하고 사회경제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좋아하고 그렇게 꿈꿀지도 모르겠습니다. 교회가 커져서 마음껏 2세들을 양육하고, 지역에 큰 교회로 소문 났으면 하는 바램도 있습니다. 물론 그런 바람들이 전부 잘못됐다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저 이런 모습은 갓난 아이와 같은 엷은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성숙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업그레이드 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한 단계 도약하려 한다면 다시금 우리 안에 오직 예수 정신을 심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 그리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실 때, 그분의 복음과 생명일 때 우리의 신앙과 교회는 건강하고 튼튼한 반석 위에 세운 교회가 될 것이라고 굳게 확신합니다. 예수가 빠진, 오직 예수님 한 분 만으로 만족 못하는 우리들의 신앙이 된다면 다시금 우리는 믿음 생활을 잘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기초한 믿음을 가지시고 하나님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 지니라.”(히브리서 11장 6절)라는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고, 우리를 위해 하나님 우편에서 열심히 중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저희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신다는 사실을 확증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보스톤 필그림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인성과 연합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의 원리를 믿고 희생의 진리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삶에 녹아지고 우리 인생의(신앙의) 전부이기를 소원합니다. 때론 힘들고 우리의 바라는 모든 것들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도, 혹은 보지 못하는 증거들이 아니어도 예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고 기뻐하길 원합니다. 우리 믿음의 반석 되신 주님께 기대어 오직 하나님을 순전하게 의지하고 우리와 우리 교회를 향한 이 마지막 시대의 사명을 감당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도하심을 온전히 신뢰함으로 오직 우리 안에 반석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타나는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는 그런 우리 교회가 되도록 앞으로도 계속 노력하는 저와 성도님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