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메이지대학에서 가르치고 계신 대학 선배님의 글 속에서 우연히 김소운 님의 “가난한 날의 행복”이라는 수필에 들어 있던 한 실화를 보게 되었다. 소개하면 이렇다. (아래의 부분은 전부 인용부분입니다.)
그들은 가난한 신혼부부였다. 보통의 경우라면, 남편이 직장으로 나가고 아내는 집에서 살림을 하겠지만, 그들은 반대였다. 남편은 실직으로 집 안에 있고, 아내는 집에서 가까운 어느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쌀이 떨어져서 아내는 아침을 굶고 출근을 했다. “어떻게든지 변통을 해서 점심을 지어 놓을 테니, 그 때까지만 참으오.” 출근하는 아내에게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마침내 점심 시간이 되어서 아내가 집에 돌아와 보니, 남편은 보이지 않고, 방 안에는 신문지로 덮인 밥상이 놓여 있었다. 아내는 조용히 신문지를 걷었다. 따뜻한 밥 한 그릇과 간장 한 종지… 쌀은 어떻게 구했지만, 찬까지는 마련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아내는 수저를 들려고 하다가 문득 상 위에 놓인 쪽지를 보았다. “왕후의 밥, 걸인의 찬… 이걸로 우선 시장기만 속여 두오.” 낯익은 남편의 글씨였다. 순간, 아내는 눈물이 핑 돌았다. 왕후가 된 것보다 행복했다. 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행복감에 가슴이 부풀었다…
이글은 현대적인 글도, 그렇다고 신앙적인 글도 아니다. 아니 신앙적인 글은 될 수 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언 17:1)라는 말씀을 일상의 삶 가운데서 적용할 수 있는 실화이다. 그러나 이 글을 읽으면서 현대인들이 상실한, 어둠 속에 더더욱 여전히 빛나는 무언가가 있음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인간다운 냄새, 함께 하는 삶과 그 속에서 발하는 믿음의 빛이었다. 자본주의와 기술의 진보 가운데 셀비(셀폰+좀비의 합성어)가 되어버린 낯선 개인에게 부부란 무엇이며, 가족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를 배우고도 여전히 타인의 기대치에 자신을 맞출려고 율법의 짐을 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본다. 우리는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신앙의 목소리를 삶에 구현할 용기와 그것을 함께 돕고 용인할 공동체는 될 수 없는가? 가난함 속에 부함이 있고, 연약함 속에 강함을 담을 수 있는 진정한 예수 정신은 우리로 하여금 먼저 하나님의 인간됨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각각 다른 이웃의 삶을 배려하면서 그들 삶 속에 빛나는 믿음의 빛에 참여하게 만든다.
그들은 가난한 신혼부부였다. 보통의 경우라면, 남편이 직장으로 나가고 아내는 집에서 살림을 하겠지만, 그들은 반대였다. 남편은 실직으로 집 안에 있고, 아내는 집에서 가까운 어느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쌀이 떨어져서 아내는 아침을 굶고 출근을 했다. “어떻게든지 변통을 해서 점심을 지어 놓을 테니, 그 때까지만 참으오.” 출근하는 아내에게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마침내 점심 시간이 되어서 아내가 집에 돌아와 보니, 남편은 보이지 않고, 방 안에는 신문지로 덮인 밥상이 놓여 있었다. 아내는 조용히 신문지를 걷었다. 따뜻한 밥 한 그릇과 간장 한 종지… 쌀은 어떻게 구했지만, 찬까지는 마련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아내는 수저를 들려고 하다가 문득 상 위에 놓인 쪽지를 보았다. “왕후의 밥, 걸인의 찬… 이걸로 우선 시장기만 속여 두오.” 낯익은 남편의 글씨였다. 순간, 아내는 눈물이 핑 돌았다. 왕후가 된 것보다 행복했다. 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행복감에 가슴이 부풀었다…
이글은 현대적인 글도, 그렇다고 신앙적인 글도 아니다. 아니 신앙적인 글은 될 수 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언 17:1)라는 말씀을 일상의 삶 가운데서 적용할 수 있는 실화이다. 그러나 이 글을 읽으면서 현대인들이 상실한, 어둠 속에 더더욱 여전히 빛나는 무언가가 있음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인간다운 냄새, 함께 하는 삶과 그 속에서 발하는 믿음의 빛이었다. 자본주의와 기술의 진보 가운데 셀비(셀폰+좀비의 합성어)가 되어버린 낯선 개인에게 부부란 무엇이며, 가족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를 배우고도 여전히 타인의 기대치에 자신을 맞출려고 율법의 짐을 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본다. 우리는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신앙의 목소리를 삶에 구현할 용기와 그것을 함께 돕고 용인할 공동체는 될 수 없는가? 가난함 속에 부함이 있고, 연약함 속에 강함을 담을 수 있는 진정한 예수 정신은 우리로 하여금 먼저 하나님의 인간됨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각각 다른 이웃의 삶을 배려하면서 그들 삶 속에 빛나는 믿음의 빛에 참여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