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과히 살기 좋은 시대라기 보다는 점점 살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말 속에는 바깥 세상은 점점 편하고 살기 좋아 보이는데 왠지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힘들어 보이는 그런 괴리속에 살고 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현대를 좌우하는 몇가지 단어를 내 삶에 대비해 본다면 더욱 분명해 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마다 제일 먼저 입에 담는 것은 역시 ‘돈’입니다. 빈부의 양극화가 쏟아낸 여러 현상들, 만년 인턴/비정규직 세대, 금수저/흙수저 논란, 그리고 이 잘사는 미국에서조차 늘 돈에 쪼들리거나 혹은 돈에 매여사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 참 살기 힘들어 보입니다. 또 다른 상황은 우리의 현재의 위치들입니다. 남이 보기에는 괜찮고 번듯한 것 같으나 그래도 확정되지 않는 앞으로의 삶 때문에, 그리고 안정된 그것을 찾아가는 우리 자신들의 과정에 있는 스트레스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남과의 비교 때문에 생기는 우울함으로 더 힘들어 보입니다. 이런 현실과 과정을 넘어 하나님께 나와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우리의 형제 자매들을 볼 때 눈물이 나옵니다.
확실히 신앙적으로도 살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아예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를 망신주려고 작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들의 비판이 건강하고 정당한 부분도 많으나, 상당 부분 세상의 기준으로 행하는 조롱일 때가 많습니다. 내적으로도 예전처럼 말씀의 감동이나 그 힘과 능력의 역사함이 적어졌습니다. 교회 안에서조차도 세상 사람들처럼 자기의로 가득차 있습니다. 한마디로 종교생활로 전환된 요즘의 신앙생활을 보게 됩니다. 그렇기에 신앙생활마저도 힘들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교회가 소망이 없는 것일까요? 우리 하나님이 변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잘못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모든 것을 계획하고 우리의 식과 방법대로 해 나가고 결과마저도 평가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믿고 나아가는 삶, 하나님의 식과 방법을 따라 성도의 인내를 이루는 삶, 기도의 능력을 믿고 간구하는 삶, 여전히 어제도 오늘도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고 순종함으로 그 다음을 믿는 삶이 필요합니다. 그때 우리는 세상 속에서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것이며 세상 기준을 넘어서 괜찮게 살고 있는 우리들을 발견할 것입니다.
확실히 신앙적으로도 살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아예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를 망신주려고 작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들의 비판이 건강하고 정당한 부분도 많으나, 상당 부분 세상의 기준으로 행하는 조롱일 때가 많습니다. 내적으로도 예전처럼 말씀의 감동이나 그 힘과 능력의 역사함이 적어졌습니다. 교회 안에서조차도 세상 사람들처럼 자기의로 가득차 있습니다. 한마디로 종교생활로 전환된 요즘의 신앙생활을 보게 됩니다. 그렇기에 신앙생활마저도 힘들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교회가 소망이 없는 것일까요? 우리 하나님이 변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잘못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모든 것을 계획하고 우리의 식과 방법대로 해 나가고 결과마저도 평가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믿고 나아가는 삶, 하나님의 식과 방법을 따라 성도의 인내를 이루는 삶, 기도의 능력을 믿고 간구하는 삶, 여전히 어제도 오늘도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고 순종함으로 그 다음을 믿는 삶이 필요합니다. 그때 우리는 세상 속에서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것이며 세상 기준을 넘어서 괜찮게 살고 있는 우리들을 발견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