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전세계 이목을 끌었던 뉴스 중에 하나는 바로 시리아 난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그들의 실상을 알리는 몇몇 사진들은 아직도 우리의 뇌리에 강력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시리아 반군과 이슬람 테러조직인 ISIS로 인해 평화로웠던 도시 알렙포(Aleppo)를 비롯하여 시리아는 전쟁의 수렁으로 빠지게 됩니다. 어린 아이들을 포함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폭격과 총성으로 인해 죽게 되고 급기야는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떠나 레바논으로 터키로 그리고 유럽으로 탈출하게 됩니다. 거대한 시리아 난민의 물결이 온 지중해와 유럽을 휩쓸게 되고, 그 와중에 또 다른 희생자들을 낳게 됩니다. 여전히 대다수 그들은 난민 캠프에서 불안에 떨며 살고 있습니다. 폭격으로 인해 죽은 어린 아이들과 폐허가 된 도시를 등지고 떠나는 사람들의 슬픔은 전세계인의 짧은 동정을 이끌어 냈지만, 이내 곧 포용의 한계와 현실의 불편함에 부디친 각 나라의 자국 이기주의와 민족적 종교적 편견에 곧 묻혀버리는 안타까운 결과를 낳았습니다. 난민들이 무엇을 가장 원할까요? 아마도 전쟁이 없는 평화일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두 다리 뻗고 식구들과 함께 편안한 잠을 자고 다음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꿈일 것입니다.
미국에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그들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어쩌면 자신들과 가정들 조차도 현실에서 전쟁처럼 힘든 상황에 있기에 그들에 대한 관심과 상황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예수님은 평화의 왕(The Prince of Peace)으로 오셨습니다. 욕심과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된 그 자리에 예수님은 다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회복을 위해 사람의 모습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독히도 세상의 방식과는 정반대의 삶을 사셨습니다. 마치 성 프란시스의 찬양시처럼,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는 삶을 사셨습니다. 마지막에는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면서까지 이 세상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이미 우리에게 평화를 지식이 아닌 삶으로 보여주신 예수님처럼, 이 땅에서 우리와 우리 교회도 욕심과 교만과 분열의 이기심을 버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복음을 따라 사는 진정한 자아 죽음의 삶, 그래서 예수님처럼 모든 것을 내어 주는 사랑의 삶으로 한걸음씩 나갈 때 우리는 이 땅이 평화로 가득함을 보게 될 것입니다.
미국에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그들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어쩌면 자신들과 가정들 조차도 현실에서 전쟁처럼 힘든 상황에 있기에 그들에 대한 관심과 상황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예수님은 평화의 왕(The Prince of Peace)으로 오셨습니다. 욕심과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된 그 자리에 예수님은 다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회복을 위해 사람의 모습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독히도 세상의 방식과는 정반대의 삶을 사셨습니다. 마치 성 프란시스의 찬양시처럼,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는 삶을 사셨습니다. 마지막에는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면서까지 이 세상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이미 우리에게 평화를 지식이 아닌 삶으로 보여주신 예수님처럼, 이 땅에서 우리와 우리 교회도 욕심과 교만과 분열의 이기심을 버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복음을 따라 사는 진정한 자아 죽음의 삶, 그래서 예수님처럼 모든 것을 내어 주는 사랑의 삶으로 한걸음씩 나갈 때 우리는 이 땅이 평화로 가득함을 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