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에 붙들려 사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뉴튼에 사는 딸 아이의 친구 중에 날 때부터 다운 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난 브라이언 (Brian) 이라는 청년이 있습니다. 이 청년의 최고의 목적은 자기와 같은 사람도 한 인간으로서 정상적인 가치를 가지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늘 여름마다 뉴튼에서 하는 Echo Bridge Camp에 참여합니다. 그곳은 자기처럼 핸디캡을 가지고 있는 많은 아이들이 정상적인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서 캠프를 하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캠프 카운셀러로 활동을 하면서 다른 아이들을 돕고 있습니다. 때때로 각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돌면서 많은 아이들 앞에서 자신의 경험을 나누면서 편견을 버리고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의 중요성을 피력합니다. 이 목적 하나를 가지고 자신을 초청하는 곳은 먼길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불편함도 그리고 남들의 따가운 시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당당하게 자신과 같은 아이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사회적인 제도들의 개선점도 주창합니다. 물론 함께 하는 부모의 도움도 크지만 말입니다. 늘 브라이언을 볼 때마다 참 건강하게 자랐고, 올바른 가치관을 실제로 삶 속에서 보여주며 실천해 가는 좋은 청년이라고 생각합니다.
선한 목적에 붙들려 산다라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시간을 아끼고 사역을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를 갖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최고의 목적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습니다. 평생의 길을 회고 하면서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고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그가 복음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절박하고도 갈급하게 전하도록 만든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가 구원을 주시는 복음의 능력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고, 시공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성령의 인도하심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소망과 확신과 보호하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런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들도 함께 경험하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함께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길 원했습니다. 그렇기에 예루살렘에서 지중해를 거쳐, 로마에까지 그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고 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들은 어떤 선한 목적에 붙들린 바 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선한 목적에 붙들려 산다라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시간을 아끼고 사역을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를 갖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최고의 목적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습니다. 평생의 길을 회고 하면서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고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그가 복음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절박하고도 갈급하게 전하도록 만든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가 구원을 주시는 복음의 능력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고, 시공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성령의 인도하심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소망과 확신과 보호하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런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사람들도 함께 경험하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함께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길 원했습니다. 그렇기에 예루살렘에서 지중해를 거쳐, 로마에까지 그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고 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들은 어떤 선한 목적에 붙들린 바 된 삶을 살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