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민교회의 여름은 지독한 엔트로피의 징후를 보여준다. 교회와는 느슨한 끈을 유지하지만 공동체 모임을 소홀히 하게 될 뿐만 아니라 모임 자체도 해이해진다. (물론 휴가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일을 넘겨 뛰어 가면서 주변 사람들과 같이 휴가에 집중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한국도 가고 멀리 해외 여행도 가는데 휴가로 몇주일 빠진다고 뭐가 대수롭냐는듯 오히려 자신들을 정당화한다. 평상시에 집중하던 말씀에 대한 관심도, 그리고 삶을 지탱해 오던 기도도 약해지고, 결국 신앙이 무질서하게 떨어지는 것을 본다. 더운 여름만큼이나 자신의 영적인 상태도 습하고 늘어지는 것을 본다. 그리고 이런 삶이 매년마다 반복되면서 더욱 굳건히 습관화되는 것을 본다. 여름만 되면 몸과 마음이 마치 권리인냥 외쳐댄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무질서,부정, 추락, 파괴, 소멸, 죽음으로 가는 심각한 병이다. 평신도들 뿐만 아니라 목회자 자신도 그런 징후에서 예외일 수 없음을 보게 된다. 마치 전체가 전염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멈춰야한다. 다시 한번 반전을 이뤄야한다. 여름에 익숙해진 사람일수록 가을이 힘든 법이다. 그러나 세상 어떤 일에도 반드시 해결책은 있듯이 이런 현상들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엔트로피(entropy:추락/소멸의 과정)’에서 ‘네트로피(netropy: 상승/창조의 과정)’로의 반전을 이뤄낼 수 있는 것이다. 고맙게도 성경과 교회의 역사는 우리에게 그것을 해낼 방법들을 반복적으로 제시한다. 그것의 출발점은 다시 하나님께로 가까이 돌아오는 것이다. 물론 돌아간 거리만큼이나 돌아올 길이 힘들긴 하지만 그 길은 의외로 가까울 수가 있다. 하나님 아버지는 당신을 바라보고 돌아오는 그 누구라도 반가이 맞아들여주실 뿐만 아니라 그곳에 풍성한 잔치를 배설해 놓으신다. 돌아온 탕자의 잔치와 모압에서 돌아온 나오미의 경우를 보라! 하나님께로 가까이 돌아온 그들은 하나님과의 향연을 누릴 수 있었고, 그들의 영적인 침체도 회복될 수 있었다.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전심의 예배를 회복한다는 의미이며, 그동안 떠나 있었던 말씀과 기도를 통해 믿음을 회복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다시 사랑을 회복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그것을 혼자 행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는 말씀처럼, 믿음의 공동체를 다시 견고히 일으켜 세워야 한다. 믿음의 날개짓으로 다시 부상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멈춰야한다. 다시 한번 반전을 이뤄야한다. 여름에 익숙해진 사람일수록 가을이 힘든 법이다. 그러나 세상 어떤 일에도 반드시 해결책은 있듯이 이런 현상들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엔트로피(entropy:추락/소멸의 과정)’에서 ‘네트로피(netropy: 상승/창조의 과정)’로의 반전을 이뤄낼 수 있는 것이다. 고맙게도 성경과 교회의 역사는 우리에게 그것을 해낼 방법들을 반복적으로 제시한다. 그것의 출발점은 다시 하나님께로 가까이 돌아오는 것이다. 물론 돌아간 거리만큼이나 돌아올 길이 힘들긴 하지만 그 길은 의외로 가까울 수가 있다. 하나님 아버지는 당신을 바라보고 돌아오는 그 누구라도 반가이 맞아들여주실 뿐만 아니라 그곳에 풍성한 잔치를 배설해 놓으신다. 돌아온 탕자의 잔치와 모압에서 돌아온 나오미의 경우를 보라! 하나님께로 가까이 돌아온 그들은 하나님과의 향연을 누릴 수 있었고, 그들의 영적인 침체도 회복될 수 있었다.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전심의 예배를 회복한다는 의미이며, 그동안 떠나 있었던 말씀과 기도를 통해 믿음을 회복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다시 사랑을 회복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그것을 혼자 행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는 말씀처럼, 믿음의 공동체를 다시 견고히 일으켜 세워야 한다. 믿음의 날개짓으로 다시 부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