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_0115
한인 회보 칼럼
한국에 계신 줄로만 알았던 어느 집사님에게서 소식이 왔다. 보스톤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에 있는 직장으로 되돌아갔는데 뜻밖에도 영국에서 가르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분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영화 속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꽤 좋아 보이는 직장, 편안하게 누리게 될 사회적 위치, 무엇보다도 부모님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여건들… 그러나 늘 생각을 깊이 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분이라 집사님의 새로운 선택에 믿음이 갔다. 영국에서 들려오는 소식 중에 인상 깊은 것은 보스톤에 있을 때는 많이 대접 받았는데, 영국에 가보니 이제는 더 곤궁한 유학생들이 많아 대접하는 위치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신앙생활의 주변부에서 이제는 중심부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생활이 전보다는 더 버겁 고 힘들지만 그래도 그곳의 유학생들을 섬기며 사랑하며 사는 것을 보니 집사님 내외의 마음이 훨씬 풍요롭고 아름다워 보인다. 그분들이 비록 보이지 않는 길을 가지만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보니 감사하기만 하다.
보스톤에 산지 15년째가 되어간다. 유학생에서 이민 목회자가 되기까지 세월이 그만큼 훌쩍 지나간 셈이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보스톤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만나 함께 신앙생활 하다가 한국이나 타주로 귀국한 사람들은 거의 대개 다시 만나지 못한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안부도 묻다가 이내 소식도 뜸해지고 연락도 끊어진다. 물론 페이스북도 하고 때론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소식도 듣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함께 신앙생활 했던 기억만 남아 있을 뿐이다. 가슴 한 켠에는 어느덧 이곳 교민들처럼 그동안 정들었던 사람들을 떠나 보내면서 새로 오신 분들에게 다시는 정주지 말아야지 하는 그런 애절함이 느껴진다. 그렇기에 함께 있을 때 잘 해야지 떠난 다음에 잘 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더 나아가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말 속에는 사랑하며 살아도 모자란 것이 우리의 짧은 인생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정말 머리 속에 꼭 기억이 남는 분들이 있다. 바로 하나님을 뒤늦게 알고 학문과 삶의 자리에서 정말 진지하게 씨름하던 분들이다. 비록 신앙의 출발은 늦었지만 스폰지처럼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한 말씀 한 말씀을 소중히 여기며 그들 삶에 적용하고자 하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얍복강 나루터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던 야곱의 모습과 흡사 비슷하다. 세상의 시각에서 믿음의 시각으로 바뀌는 것을 보면 기적처럼 느껴진다. 그렇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기에 그분들에게 있어 그 후의 삶은 제 2의 인생과 같은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 고민거리도 아닌 것을 가지고 진지하게 숙고하고 세상의 식과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식과 방법을 고집해 나가는 분들이 만나는 장애는 생각보다 크다. 당장의 불이익이 실제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것도 때론 같이 믿는 사람들에게서 말이다. 그러나 일단 그들이 하나님의 식과 방법을 고집하고 나면 붙드시는 하나님의 손길과 인도하심은 더 크고 강하다. 그래서 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다. 은혜라는 말은 필립 얀시의 말처럼, 그럴 만한 값어치와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거저 주어지는 최고의 최상의 선물이 아니던가! 그분들 마음 속에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어여삐 여기시고 더 사랑하신 것이다.
이민목회를 하면서 은혜를 또 다른 의미로 경험하게 된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사람은 바로 두번째 기회 (second chance)를 얻게 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이곳 보스톤을 떠나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함께 신앙 생활하는 분들 중에는 몇 년간 아주 떨어져 지내다가 다시 만나 같은 교회를 섬기는 분들도 있다. 다시 만났는데 반가움을 뛰어넘어 이제는 전혀 새로운 분들로 다가오신 분들이다. 얼굴도 변하고 아이들도 훌쩍 커버렸다. 그리고 그 동안의 사연을 통해 그전에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도 깨닫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또 다시 만나게 하셨을까? 다른 사람들이야 잘 모르겠지만 내 입장으로 보면 은혜이다. 즉 그분들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더 잘 섬길 두번째 절호의 기회이다. 첫번째 만남에서는 조금 덜 성숙한 조야함으로 인간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서로에 대해 이기적인 마음이 섞인 채 함께 했던 시간이라면, 두번째 주어진 이 기회는 함께 하나님을 더 많이 바라보고 이제는 믿음의 성숙을 이루어 서로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런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정말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이다.
2014년이라는 새해도 마찬가지로 다가온다. 하나님께서는 또 다시 모든 사람에게 햇빛과 공기와 그리고 이 새로운 한 해를 주셨다. 많은 세월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 세월 중에 얼마만큼 의미가 있고 기억에 남을까? 사랑과 은혜의 시간을 경험한 사람들은 결코 그 때를 잊지 못할 것이다. 겨자씨만큼 작은 믿음이지만 믿음의 시각으로 눈 앞의 안일과 실속보다 먼 미래의 행복을 그려보고, 주어진 여건과 환경 속에서 가난한 마음으로 예수님처럼 낮아져서 섬기고 사랑하며 살 때 비로소 우리는 함께 하는 공동체와 우리 안에 충만하게 부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세상이 아름답고 사람들에게 감사하게 될 것이다. 비록 어제와 동일한 일을 하지만 늘 새롭고, 동일한 사람들을 또 다시 새롭게 만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고백을 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 깨끗한 백지장처럼 또 다시 주어진 은혜의 삼백육십오일, 아름답게 감사하게 살겠습니다.”
한인 회보 칼럼
한국에 계신 줄로만 알았던 어느 집사님에게서 소식이 왔다. 보스톤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에 있는 직장으로 되돌아갔는데 뜻밖에도 영국에서 가르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분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영화 속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꽤 좋아 보이는 직장, 편안하게 누리게 될 사회적 위치, 무엇보다도 부모님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여건들… 그러나 늘 생각을 깊이 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분이라 집사님의 새로운 선택에 믿음이 갔다. 영국에서 들려오는 소식 중에 인상 깊은 것은 보스톤에 있을 때는 많이 대접 받았는데, 영국에 가보니 이제는 더 곤궁한 유학생들이 많아 대접하는 위치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신앙생활의 주변부에서 이제는 중심부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생활이 전보다는 더 버겁 고 힘들지만 그래도 그곳의 유학생들을 섬기며 사랑하며 사는 것을 보니 집사님 내외의 마음이 훨씬 풍요롭고 아름다워 보인다. 그분들이 비록 보이지 않는 길을 가지만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보니 감사하기만 하다.
보스톤에 산지 15년째가 되어간다. 유학생에서 이민 목회자가 되기까지 세월이 그만큼 훌쩍 지나간 셈이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보스톤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만나 함께 신앙생활 하다가 한국이나 타주로 귀국한 사람들은 거의 대개 다시 만나지 못한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안부도 묻다가 이내 소식도 뜸해지고 연락도 끊어진다. 물론 페이스북도 하고 때론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소식도 듣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함께 신앙생활 했던 기억만 남아 있을 뿐이다. 가슴 한 켠에는 어느덧 이곳 교민들처럼 그동안 정들었던 사람들을 떠나 보내면서 새로 오신 분들에게 다시는 정주지 말아야지 하는 그런 애절함이 느껴진다. 그렇기에 함께 있을 때 잘 해야지 떠난 다음에 잘 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더 나아가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말 속에는 사랑하며 살아도 모자란 것이 우리의 짧은 인생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정말 머리 속에 꼭 기억이 남는 분들이 있다. 바로 하나님을 뒤늦게 알고 학문과 삶의 자리에서 정말 진지하게 씨름하던 분들이다. 비록 신앙의 출발은 늦었지만 스폰지처럼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한 말씀 한 말씀을 소중히 여기며 그들 삶에 적용하고자 하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얍복강 나루터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던 야곱의 모습과 흡사 비슷하다. 세상의 시각에서 믿음의 시각으로 바뀌는 것을 보면 기적처럼 느껴진다. 그렇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기에 그분들에게 있어 그 후의 삶은 제 2의 인생과 같은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 고민거리도 아닌 것을 가지고 진지하게 숙고하고 세상의 식과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식과 방법을 고집해 나가는 분들이 만나는 장애는 생각보다 크다. 당장의 불이익이 실제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것도 때론 같이 믿는 사람들에게서 말이다. 그러나 일단 그들이 하나님의 식과 방법을 고집하고 나면 붙드시는 하나님의 손길과 인도하심은 더 크고 강하다. 그래서 더 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다. 은혜라는 말은 필립 얀시의 말처럼, 그럴 만한 값어치와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거저 주어지는 최고의 최상의 선물이 아니던가! 그분들 마음 속에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어여삐 여기시고 더 사랑하신 것이다.
이민목회를 하면서 은혜를 또 다른 의미로 경험하게 된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사람은 바로 두번째 기회 (second chance)를 얻게 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이곳 보스톤을 떠나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함께 신앙 생활하는 분들 중에는 몇 년간 아주 떨어져 지내다가 다시 만나 같은 교회를 섬기는 분들도 있다. 다시 만났는데 반가움을 뛰어넘어 이제는 전혀 새로운 분들로 다가오신 분들이다. 얼굴도 변하고 아이들도 훌쩍 커버렸다. 그리고 그 동안의 사연을 통해 그전에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도 깨닫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또 다시 만나게 하셨을까? 다른 사람들이야 잘 모르겠지만 내 입장으로 보면 은혜이다. 즉 그분들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더 잘 섬길 두번째 절호의 기회이다. 첫번째 만남에서는 조금 덜 성숙한 조야함으로 인간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서로에 대해 이기적인 마음이 섞인 채 함께 했던 시간이라면, 두번째 주어진 이 기회는 함께 하나님을 더 많이 바라보고 이제는 믿음의 성숙을 이루어 서로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런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정말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이다.
2014년이라는 새해도 마찬가지로 다가온다. 하나님께서는 또 다시 모든 사람에게 햇빛과 공기와 그리고 이 새로운 한 해를 주셨다. 많은 세월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 세월 중에 얼마만큼 의미가 있고 기억에 남을까? 사랑과 은혜의 시간을 경험한 사람들은 결코 그 때를 잊지 못할 것이다. 겨자씨만큼 작은 믿음이지만 믿음의 시각으로 눈 앞의 안일과 실속보다 먼 미래의 행복을 그려보고, 주어진 여건과 환경 속에서 가난한 마음으로 예수님처럼 낮아져서 섬기고 사랑하며 살 때 비로소 우리는 함께 하는 공동체와 우리 안에 충만하게 부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세상이 아름답고 사람들에게 감사하게 될 것이다. 비록 어제와 동일한 일을 하지만 늘 새롭고, 동일한 사람들을 또 다시 새롭게 만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고백을 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 깨끗한 백지장처럼 또 다시 주어진 은혜의 삼백육십오일, 아름답게 감사하게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