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한가위를 맞은지 벌써 16년째가 되어 간다. 명절을 맞을 때면 늘 그러하듯 한국에 계신 부모님, 형제, 자매 그리고 친척들에게 늘 미안하고 한편으로는 그립다. 안부 전화 한통으로 모든 것을 떼울려는 염치없음이 죄스럽지만, 그래도 가족이라는 이름은 늘 따뜻함과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송편을 빚으며 도란도란 앉아 있을 식구들, 오랜 시간 버스를 타고 늦은 밤 도착했을 친척들의 피곤함도 이내 주름살 펴진 부모님들의 함박 웃음으로 삭 가실 것이다. 분명 식구들 중에는 여러 이유들로 인해 오살밉게 미워하고 서운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일단 얼굴을 보면 영락없는 한피붙이들이다. 서로의 얼굴속에 묻어 나는 진솔한 속사연들은 감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얼굴을 함께 마주 본다는 것은 그런 삶의 감정들을 고스란히 나누는 것이 된다. 그래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때론 섭섭해 하면서도 용서할 수 있는 곳… 이것이 함께 모이는 명절이 좋고 또 고달픈 이면에 힘을 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이민교회의 또다른 이름은 가족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들의 고통과 아픔과 상처가 치유되었기에, 십자가 아래 있는 우리는 같은 은혜를 받은 한 식구들이다. 예수님 안에서 한가족이기에 서로 얼굴을 맞대고 본다. 그런데 ‘우리 가족은 비밀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작은 교회의 구성원들은 자기가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우리들의 힘듦과 어려움들이, 그리고 단점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래도 세월의 햇수 속에 그을린 삶의 무게를 저마다 느끼며 어그러진 서로의 속사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곳, 그 안에서 모가 나고 때론 섭섭케 해도 혹은 불편함이 있어도 넉넉한 마음으로 포용해 줄 수 있는 믿음의 가족. 그런 한가족이 바로 우리 이민교회이다. 그안에 다시 회복을 심고, 사랑을 심고, 화평을 심고, 섬김을 심고… 예수님의 마음을 심을 수 있어야 한다. 한가위에 더더욱 힘든 가족들을 꽉 껴안아 줄수 있는 진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붙이들이 됐으면 한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133:1)
이민교회의 또다른 이름은 가족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들의 고통과 아픔과 상처가 치유되었기에, 십자가 아래 있는 우리는 같은 은혜를 받은 한 식구들이다. 예수님 안에서 한가족이기에 서로 얼굴을 맞대고 본다. 그런데 ‘우리 가족은 비밀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작은 교회의 구성원들은 자기가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우리들의 힘듦과 어려움들이, 그리고 단점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래도 세월의 햇수 속에 그을린 삶의 무게를 저마다 느끼며 어그러진 서로의 속사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곳, 그 안에서 모가 나고 때론 섭섭케 해도 혹은 불편함이 있어도 넉넉한 마음으로 포용해 줄 수 있는 믿음의 가족. 그런 한가족이 바로 우리 이민교회이다. 그안에 다시 회복을 심고, 사랑을 심고, 화평을 심고, 섬김을 심고… 예수님의 마음을 심을 수 있어야 한다. 한가위에 더더욱 힘든 가족들을 꽉 껴안아 줄수 있는 진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붙이들이 됐으면 한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1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