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버트 드레이퍼스 (Hubert Dreyfus)와 숀 켈리(Sean D. Kelly)는 “모든 것은 빛난다”(All Things Shining)에서 현대인들이 고민하고 있는 첫번째 주제로 ‘선택의 짐’을 들었다. 현대인들은 과거에 비해 매순간마다 선택의 파도에 대한 엄청난 중압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짐을 회피하기 위해 자기 결정이 반드시 옳고 확실하다는 ‘절대적인 자기 확신’을 가지거나 혹은 어떤 것(그것이 페이스북이든지 혹은 골프, 쇼핑이든지…)에 완전히 빠짐으로서 거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결국 ‘중독으로 인한 통제력 상실’로 인해 그 중압감을 회피한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그들은 이런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 이유에 대해서 아주 정확하게 꼬집었다. 그것은 바로 ‘확실성의 부족’이라는 개념이었다. 그리고 그 부족함은 대부분 망설임과 우유부단함을 낳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신앙인에게도 동일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아무리 배우고 훈련받았다고 하지만 그 안에서 절대적인 확신에 이르기 전까지는 관념적 신앙인에 머무르게 된다. 무언가를 하긴 하는데 그것이 각성되지 않고 습관화 된다. 마치 정신줄 놓고 운전하듯이 하는 것처럼 말이다. 관념적 신앙인도 어떤 일이나 혹은 상태가 하나님께 기쁨이 된다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그런 일에 참여하여 실제로 기쁨을 누린다. 그러나 한가지 부족한 것은 행동의 우선성을 가진다든가 혹은 실제적으로 자연스럽게 몸이 마음처럼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헌신은 절대적인 확실성 없이는 많이 힘들다. 헌신했다손 치더라도 오래 가지 못한다. 우주와 역사를 주관하는 하나님에 대한 확실성,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과 사랑에 대한 확실성, 성령님의 인도와 지혜에 대한 확실성,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실성 없이는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 관념적 지식을 아는데 그쳐서 그 지식이 내가 가지고 있는 다른 확실성(주관, 철학, 경험 등)들과 경쟁을 해야 하므로 온전한 헌신이 나오기 힘들다. 헌신이라는 전제 속에는 이미 이루어질 실재에 대한 믿음을 요구하기에 지금 여러가지 것들 중에서 경쟁해서 선택해야 하는 망설임이 아니고 하나 하나 부딛혀 가면서 깨닫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전체를 읽어나가면서 인도하는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다. 확실히 다원주의(pluralism)를 경험하고 있는 신앙인들에게 하나 만을 강요한다는 것은 어렵다. 그래도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선택과 헌신의 짐은 훨씬 가벼워지지 않을까?
대부분의 신앙인에게도 동일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아무리 배우고 훈련받았다고 하지만 그 안에서 절대적인 확신에 이르기 전까지는 관념적 신앙인에 머무르게 된다. 무언가를 하긴 하는데 그것이 각성되지 않고 습관화 된다. 마치 정신줄 놓고 운전하듯이 하는 것처럼 말이다. 관념적 신앙인도 어떤 일이나 혹은 상태가 하나님께 기쁨이 된다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그런 일에 참여하여 실제로 기쁨을 누린다. 그러나 한가지 부족한 것은 행동의 우선성을 가진다든가 혹은 실제적으로 자연스럽게 몸이 마음처럼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헌신은 절대적인 확실성 없이는 많이 힘들다. 헌신했다손 치더라도 오래 가지 못한다. 우주와 역사를 주관하는 하나님에 대한 확실성,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과 사랑에 대한 확실성, 성령님의 인도와 지혜에 대한 확실성,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실성 없이는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 관념적 지식을 아는데 그쳐서 그 지식이 내가 가지고 있는 다른 확실성(주관, 철학, 경험 등)들과 경쟁을 해야 하므로 온전한 헌신이 나오기 힘들다. 헌신이라는 전제 속에는 이미 이루어질 실재에 대한 믿음을 요구하기에 지금 여러가지 것들 중에서 경쟁해서 선택해야 하는 망설임이 아니고 하나 하나 부딛혀 가면서 깨닫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전체를 읽어나가면서 인도하는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다. 확실히 다원주의(pluralism)를 경험하고 있는 신앙인들에게 하나 만을 강요한다는 것은 어렵다. 그래도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선택과 헌신의 짐은 훨씬 가벼워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