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다 보면 저마다 한가지씩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가 있다. 경제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부모나 자녀의 문제일 수도 있다. 때론 내 몸 안의 질병이 나를 짖눌러 힘들게 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알 수 없는 무기력증이 나를 둘러싸기도 한다. 내가 좀처럼 쉽게 해결 할 수 없는 것,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 같은데 여전히 그곳에 자리하고 있는 우리의 연약함,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자기 십자가이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고 말씀하셨다. 예수님 마저도 십자가를 부인하지 않으셨다.오히려 당신의 십자가를 지셨다. 당당히 자기 십자가를 지시면서 마지막 순간에 너무 고통스러워 한마디 하셨다. “아버지! 아버지!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 믿으면 모든 것이 잘 될 것같고 하나님이 항상 나와 함께 하시기에 두려울 것 없을 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오히려 자기 십자가의 고통 가운데 우리를 몰아넣으시다니 조금은 비정하신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요즘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 보다는 오히려 쉬운 믿음과 한 두 마디 쉬운 기도로 자기들의 할 것을 다 했다고 자부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자기 십자가는 하나님의 긍휼의 자리이고 우리가 겪는 고통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이다. 처절하게 씨름한 흔적이 큰 자기 십자가일수록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사랑을 깨닫는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외치셨을 때 하나님이 외면하셨다고 보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마지막으로 완전한 인간이 되신 예수님이 우리 인간들의 모든 십자가를 그 두어깨에 다 담당하시면서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를 이끌어 내신 것이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 중에 보여주신 하나님의사랑이요, 우리의 고통 중에 가까이 다가오신 하나님의 손길이다. 그리고 그 사랑과 손길은 예수님과 믿는자의 부활이라는 승리를 이끌어 내셨다.
여전히 우리는 자기 십자가를 외면하려고만 한다. 외면할수록 우리에게 희망의 빛은 멀어지고, 오히려 예수님께 또 하나의 십자가를 얹어 드리는 결과가 된다. 또 다시 찾아온고난 주간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가진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희망을 버리지 않고 그것들을 우리의 어깨에 지고 갈보리산 위의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자. 그 곳의 희망을 바라보자.
예수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고 말씀하셨다. 예수님 마저도 십자가를 부인하지 않으셨다.오히려 당신의 십자가를 지셨다. 당당히 자기 십자가를 지시면서 마지막 순간에 너무 고통스러워 한마디 하셨다. “아버지! 아버지!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 믿으면 모든 것이 잘 될 것같고 하나님이 항상 나와 함께 하시기에 두려울 것 없을 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오히려 자기 십자가의 고통 가운데 우리를 몰아넣으시다니 조금은 비정하신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요즘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 보다는 오히려 쉬운 믿음과 한 두 마디 쉬운 기도로 자기들의 할 것을 다 했다고 자부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자기 십자가는 하나님의 긍휼의 자리이고 우리가 겪는 고통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이다. 처절하게 씨름한 흔적이 큰 자기 십자가일수록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사랑을 깨닫는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외치셨을 때 하나님이 외면하셨다고 보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마지막으로 완전한 인간이 되신 예수님이 우리 인간들의 모든 십자가를 그 두어깨에 다 담당하시면서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를 이끌어 내신 것이다. 십자가 위의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 중에 보여주신 하나님의사랑이요, 우리의 고통 중에 가까이 다가오신 하나님의 손길이다. 그리고 그 사랑과 손길은 예수님과 믿는자의 부활이라는 승리를 이끌어 내셨다.
여전히 우리는 자기 십자가를 외면하려고만 한다. 외면할수록 우리에게 희망의 빛은 멀어지고, 오히려 예수님께 또 하나의 십자가를 얹어 드리는 결과가 된다. 또 다시 찾아온고난 주간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가진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희망을 버리지 않고 그것들을 우리의 어깨에 지고 갈보리산 위의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자. 그 곳의 희망을 바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