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역사 가운데 초대교회 공동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자신들의 모든 것을 드려 하나님을 섬겼던 공동체가 있습니다. 흔히 가까이는 펜실베니아주에 있는 아미쉬 마을에서 찾아 볼 수 있고, 멀리는 동유럽에 멀리 퍼져 있는 여러 형제단 교회에서 그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이며 18세기의 위대한 부흥사였던 (물론 이 일 후에 그렇게 됐지만) 존 웨슬리는 미국 조지아 주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1735년 대서양을 건너게 됩니다. 배가 뒤집힐 정도로 거센 풍랑이 이는 대서양 한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사실 모두들 믿음이 있는 독실한 그리스도인들이었지만) 그 와중에 유독 흔들리지 않고 함께 모여 조용히 기도하고 찬양하는 한 공동체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은 다름 아닌 모라비안 형제단이었습니다. 말씀과 훈련에 따라 주변 환경에 휩쓸리지 않고 함께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웨슬리는폭풍 가운데서 보여준 공동체의 평정심에 큰 감동을 받았고 그 후에도 그들과 지속적인 관계와 영향을 받아 영미 부흥운동의 큰 계기를 삼게 됩니다.
그런데 이 형제단의 특징은 평신도 중심의 선교를 지향하는 공동체였다라는 사실입니다. 당시 그들의 급진성 때문에 개신교와 카톨릭의 모진 박해와 핍박을 피해 진젠도르프의 영지인 모라비아 지역의 헤른후트에 모여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철저히 성경과 성령에 인도함을 받는 경건생활의 중심이 되었고, 공동체의 나눔이 실천되었습니다. 이런 나눔은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에 대한 순종으로 발전됩니다. 다른 어느 선교보다 먼저 수많은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로 헌신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당시 가장 오지였던 서인도제도, 그린랜드, 남아메리카 수리남, 아프리카, 그리고 호주까지 선교사로 나가게 됩니다.
교회는 늘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를 지향합니다. 그러나 믿음과 물질을 아낌없이 나누는 나눔과 믿음의 간증위에 헌신된 평신도 선교(전도)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어쩌면 점점 더 수동적입니다. 신앙과 삶의 이분화이지요. 사실 예배만 드리고 그냥 올 수 있는 큰 교회를 지향하는 것도 외롭고 접촉점 없는 개별적 그리스도인들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다시 초대교회의 기본정신인 나눔과 선교가 튼튼한 예수공동체로 돌아가야 겠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이며 18세기의 위대한 부흥사였던 (물론 이 일 후에 그렇게 됐지만) 존 웨슬리는 미국 조지아 주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1735년 대서양을 건너게 됩니다. 배가 뒤집힐 정도로 거센 풍랑이 이는 대서양 한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사실 모두들 믿음이 있는 독실한 그리스도인들이었지만) 그 와중에 유독 흔들리지 않고 함께 모여 조용히 기도하고 찬양하는 한 공동체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은 다름 아닌 모라비안 형제단이었습니다. 말씀과 훈련에 따라 주변 환경에 휩쓸리지 않고 함께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웨슬리는폭풍 가운데서 보여준 공동체의 평정심에 큰 감동을 받았고 그 후에도 그들과 지속적인 관계와 영향을 받아 영미 부흥운동의 큰 계기를 삼게 됩니다.
그런데 이 형제단의 특징은 평신도 중심의 선교를 지향하는 공동체였다라는 사실입니다. 당시 그들의 급진성 때문에 개신교와 카톨릭의 모진 박해와 핍박을 피해 진젠도르프의 영지인 모라비아 지역의 헤른후트에 모여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철저히 성경과 성령에 인도함을 받는 경건생활의 중심이 되었고, 공동체의 나눔이 실천되었습니다. 이런 나눔은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에 대한 순종으로 발전됩니다. 다른 어느 선교보다 먼저 수많은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로 헌신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당시 가장 오지였던 서인도제도, 그린랜드, 남아메리카 수리남, 아프리카, 그리고 호주까지 선교사로 나가게 됩니다.
교회는 늘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를 지향합니다. 그러나 믿음과 물질을 아낌없이 나누는 나눔과 믿음의 간증위에 헌신된 평신도 선교(전도)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어쩌면 점점 더 수동적입니다. 신앙과 삶의 이분화이지요. 사실 예배만 드리고 그냥 올 수 있는 큰 교회를 지향하는 것도 외롭고 접촉점 없는 개별적 그리스도인들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다시 초대교회의 기본정신인 나눔과 선교가 튼튼한 예수공동체로 돌아가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