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주일학교 사역을 할 즈음이다. 섬기던 교회가 새로운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각 기관별로 흩어져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온 성도가 최소한 반년 이상은 불편함을 감소하며 성전을 짓는데 매달렸다. 몇차례에 걸친 성전 건축 특별예배에 어린이들도 참여하게 되었다. 온 성도가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저마다 귀한 예물을 드렸다.
그 중에 눈에 띠는 것은 단연코 어린 아이들의 코묻은 빨간 돼지 저금통이었다. 하나님의 집을 향한 어린 아이들의 귀한 마음이었다. 드리는데는 조금은 머뭇거리고 주저하는 어른보다 아이들이 빨랐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흙바닥에서 제법 붉은 벽돌로 쌓여 올라가는 성전을 만져보며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하나님을 위해 헌신을 하는데 우리는 이런 어린 아이 같은 마음이 필요하다. 우리의 시각은 ‘이것밖에 안되는데요.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마치 벳세다 들녘에서 예수님께로 가져온 어린 아이의 도시락을 보고 실망에 젖은 제자들의 마음이다. 그러나 예수님께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무한한 역사를 일으켰다. 그것을 가져다고 축사하시고는 그곳에 있던 오천 명을 먹이지 않았던가? 우리의 작은 헌신일찌라도 주님을 향한 마음은 결코 작은 법이 없다.
사람들은 늘 이렇게 말한다. “내가 형편이 되면 하지요.” 우리는 사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고 개인의 형펀에 따라 재고 주저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헌신은 늘 작은 헌신에서 출발하여 큰 헌신으로 발전한다는 사실과 바로 지금 내게 있는 것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눈에 보이는 작은 일들이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것이라면 마음을 활짝 열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순전히 하나님이시지 않는가?
그 중에 눈에 띠는 것은 단연코 어린 아이들의 코묻은 빨간 돼지 저금통이었다. 하나님의 집을 향한 어린 아이들의 귀한 마음이었다. 드리는데는 조금은 머뭇거리고 주저하는 어른보다 아이들이 빨랐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흙바닥에서 제법 붉은 벽돌로 쌓여 올라가는 성전을 만져보며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하나님을 위해 헌신을 하는데 우리는 이런 어린 아이 같은 마음이 필요하다. 우리의 시각은 ‘이것밖에 안되는데요.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마치 벳세다 들녘에서 예수님께로 가져온 어린 아이의 도시락을 보고 실망에 젖은 제자들의 마음이다. 그러나 예수님께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무한한 역사를 일으켰다. 그것을 가져다고 축사하시고는 그곳에 있던 오천 명을 먹이지 않았던가? 우리의 작은 헌신일찌라도 주님을 향한 마음은 결코 작은 법이 없다.
사람들은 늘 이렇게 말한다. “내가 형편이 되면 하지요.” 우리는 사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고 개인의 형펀에 따라 재고 주저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헌신은 늘 작은 헌신에서 출발하여 큰 헌신으로 발전한다는 사실과 바로 지금 내게 있는 것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눈에 보이는 작은 일들이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것이라면 마음을 활짝 열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순전히 하나님이시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