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상황의 변화(대부분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들이나 원치 않는 일들이 많지만)는 당장에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지만 궁극적으로 단조롭고 평안한 우리 삶에 좋은 자극이 된다. 그곳에는 위험과 불편함과 불확실성이 존재하지만 오히려 그것들을 통해서 한단계 전진하고 성숙하고 새로운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신앙의 정주함은 그런 의미에서 별로 좋은 것이 못된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온전함에 이르렀다면 모를까 (사실 그리스도의 온전함에도 무한성이 내재되어 있기에) 우리의 개별적이고 제한적인 체험과 믿음만으로 우리가 그곳에 머무르는 편안함을 누린다면 잘못된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끊임없는 도전에 직면한다. 이것을 우리는 믿음의 업그레이드(upgrade)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사실 돌이켜 보건대, 20대의 신앙과, 30대의 신앙, 그리고 40대에 들어서 돌아본 신앙에는 분명 차이가 있고 변화가 있었다. 그런데 그런 변화들 이면에는 반드시 나의 육체와 정신과 영혼을 뒤흔들만한 울림이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나만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신앙의 노마드(nomad: 유목민적 여행)를 해야만 했다.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은혜를 계획하셨고, 사람들과 장소를 미리 예비하셨으며(여호와 이레), 사막에 강을 내듯이 당신의 방법으로 그곳으로 인도하셨다(여호와 삼마). 결혼이 그랬고, 유학이 그랬고, 이민목회가 그랬다. 신앙의 노마드를 하는 동안 깊은 어둠의 터널을 지나는 것 같은 힘듦과 아픔이 있었고, 오랜 인내도 필요했다. 약속의 결과를 알면서도 그곳에 머무를 수 없게 늘 움직이도록 만드신 노마드의 고단함이 자연스레 몸에 베기도 했다. 때론 불편하고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그것이 나를 사랑하고 이끄셨던 주님의 흔적이 되었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자의든 타의든 그 신앙의 여정에 끌려가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과 함께 선구적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분명 불편하고 부담스럽다. 때론 아프다. 그러나 그것들이 우리에게 새로운 영적 활력과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공급해 줄 것이다. 이를 통해 세상에서 구별된 천국 백성의 흔적을 갖게 될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끊임없는 도전에 직면한다. 이것을 우리는 믿음의 업그레이드(upgrade)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사실 돌이켜 보건대, 20대의 신앙과, 30대의 신앙, 그리고 40대에 들어서 돌아본 신앙에는 분명 차이가 있고 변화가 있었다. 그런데 그런 변화들 이면에는 반드시 나의 육체와 정신과 영혼을 뒤흔들만한 울림이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나만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신앙의 노마드(nomad: 유목민적 여행)를 해야만 했다.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은혜를 계획하셨고, 사람들과 장소를 미리 예비하셨으며(여호와 이레), 사막에 강을 내듯이 당신의 방법으로 그곳으로 인도하셨다(여호와 삼마). 결혼이 그랬고, 유학이 그랬고, 이민목회가 그랬다. 신앙의 노마드를 하는 동안 깊은 어둠의 터널을 지나는 것 같은 힘듦과 아픔이 있었고, 오랜 인내도 필요했다. 약속의 결과를 알면서도 그곳에 머무를 수 없게 늘 움직이도록 만드신 노마드의 고단함이 자연스레 몸에 베기도 했다. 때론 불편하고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그것이 나를 사랑하고 이끄셨던 주님의 흔적이 되었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자의든 타의든 그 신앙의 여정에 끌려가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과 함께 선구적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분명 불편하고 부담스럽다. 때론 아프다. 그러나 그것들이 우리에게 새로운 영적 활력과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공급해 줄 것이다. 이를 통해 세상에서 구별된 천국 백성의 흔적을 갖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