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의 끝은 갈보리의 십자가가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믿음을 흔드는 여러 경험들과 그 속에서 제기되는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의심과 공포, 그리고 현실적인 고통들에대해서 십자가에서 완전히 해결하셨다. 그리고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에 의해 한 무덤에 장사 되었다. 그리고 빌라도와 대제사장과, 그리고 그를 못박으라고 외쳤던 모든 유대인들이 생각하기를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혀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돌아가신 지 사흘만에 예수님을 일으키심으로 우리에게 빈무덤을 남겨주셨다. 안식 후 첫날 예수님의 부활을 맨처음 목격한사람들은 여인들이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예수님의 몸은 보이지 않고 돌이 굴려진 빈무덤만 보았다. 천사들은 그 여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노라고 말해 주었다.이어 달려간베드로와 예수님의 사랑하는 애제자는 빈무덤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수님을 쌌던 수의만 보았다.
빈 무덤은 우리에게 무엇을 상징하는가? 예수님께서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확실한 증거가 바로 빈무덤이다. 주님은 우리가 믿음을 가졌어도 여전히 의심과 불안속에서 헤메일때 두려워하는 눈으로 무덤 안에 머물지 않기를 바라시며 오히려 무덤 같은 답답한 세상 속에서 밝은 빛의 무덤 밖을 우리에게 바라보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그 무언가에 갇히신 적이 있던가? 하나님이 그 어떤 것에 제약을 받으신 적이 있던가?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 안에 있는 믿음은 그 한계가 없는 것이다.
빈 무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천사는 여인들에게 어서 가서 빨리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알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먼저 갈릴리로 가셔서 그들을그곳에서 보겠노라고 말이다. 우리에게도 동일한 사명이 있다. 부활사건을 목격하고 체험했다면 주저할 이유가 없다. 우리도 여인들처럼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주님의 부활을 마음껏외쳐야 한다. 주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를 짓누르고 있던 모든 억압과 죽음의 공포에서 우리는 가슴이 뻥뚤리듯 해방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다시 새생명으로 다가오신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의 사역의 현장인 갈릴리로 가야 한다. 그곳에서 더더욱 가까이 다가온 하나님 나라와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해야 한다. 이제는 빈무덤에서 천국으로 가야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혀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돌아가신 지 사흘만에 예수님을 일으키심으로 우리에게 빈무덤을 남겨주셨다. 안식 후 첫날 예수님의 부활을 맨처음 목격한사람들은 여인들이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예수님의 몸은 보이지 않고 돌이 굴려진 빈무덤만 보았다. 천사들은 그 여인들에게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노라고 말해 주었다.이어 달려간베드로와 예수님의 사랑하는 애제자는 빈무덤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수님을 쌌던 수의만 보았다.
빈 무덤은 우리에게 무엇을 상징하는가? 예수님께서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확실한 증거가 바로 빈무덤이다. 주님은 우리가 믿음을 가졌어도 여전히 의심과 불안속에서 헤메일때 두려워하는 눈으로 무덤 안에 머물지 않기를 바라시며 오히려 무덤 같은 답답한 세상 속에서 밝은 빛의 무덤 밖을 우리에게 바라보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그 무언가에 갇히신 적이 있던가? 하나님이 그 어떤 것에 제약을 받으신 적이 있던가?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 안에 있는 믿음은 그 한계가 없는 것이다.
빈 무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천사는 여인들에게 어서 가서 빨리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알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먼저 갈릴리로 가셔서 그들을그곳에서 보겠노라고 말이다. 우리에게도 동일한 사명이 있다. 부활사건을 목격하고 체험했다면 주저할 이유가 없다. 우리도 여인들처럼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주님의 부활을 마음껏외쳐야 한다. 주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를 짓누르고 있던 모든 억압과 죽음의 공포에서 우리는 가슴이 뻥뚤리듯 해방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다시 새생명으로 다가오신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의 사역의 현장인 갈릴리로 가야 한다. 그곳에서 더더욱 가까이 다가온 하나님 나라와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해야 한다. 이제는 빈무덤에서 천국으로 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