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날짜(7월 9일)로 인해 저희 가족이 미국에 온지 17년을 채우고 18년차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초기에 유학의 꿈을 안고 한 오년 정도 살다가 귀국해야지 했는데 보스톤에 이렇게 오래 있을 줄을 생각도 못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은 사람의 계획과 다르며 그 인도하심도 철저하게 구별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잠시 머무를 유학생 신분이었다가 이제는 이곳 이민자가 된 이 시점에서 그동안 생각과 습관과 그리고 생활 양식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현실의 나를 더이상 부인하지 않으면서 다시금 과연 나는 어떤 이민자인가 생각을 해봅니다. 이는 내가 어떤 성경적 이민자의 정체성을 받아 들이느냐에 따라 나의 신앙적 방향과 노력이 결정되고 그로 인해 시행착오를 덜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믿음에서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여러 유형의 이민자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나오미, 룻, 이사야, 다니엘, 에스더, 등등. 저는 크게 이런 사람들을 세가지 유형으로 정리해 보고 싶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 자의적으로 이민을 간 사람들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먼저 나오면서 가장 흔하게 인용되는 아브라함의 예입니다. 유학을 포함해서 더 큰 어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쫓아오신 분들의 경우일 것입니다. 둘째는 자의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언약과 인도하심으로 타의적 이주의 과정을 겪었던, 그러면서도 중간기에 해당하는, 광야의 과정을 겪었던 모세와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예를 들 수 있습니다. 미국에 오신 분들 중에는 하나님께서 광야로 자신을 내몰았다고 고백하는 분들의 예가 여기에 속할 것입니다. 세번째 경우는 포로의 신분으로 쫓겨온 경우입니다. 다니엘, 학개, 스룹바벨의 경우입니다. 고국에서 파산을 하고, 혹은 차마 말할 수 없는 어떤 사정을 가지고 철저하게 고국을 등지고 떠나야만 했던 상황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어쩌면 미국이 마지막 도피처인 셈이지요.
어쩌면 위의 경우처럼 남자들의 예만 들었지만 사실은 여자들의 입장도 있을 것입니다. 룻이나 에스더 그리고 브리스길라 처럼 말입니다. 어떤 경우이든지 간에 우리는 어차피 이민자로서 낯선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어떤 유형의 이민자에 해당되는지를 깨닫고, 이미 나와 있는 그 유형의 성경적 원리를 잘 살펴본다면 우리는 우리의 이민생활을 잘 예측할 수 있을 것이며 이민자로서의 삶도 훨씬 수월해질 것입니다.
성경에서 우리는 여러 유형의 이민자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나오미, 룻, 이사야, 다니엘, 에스더, 등등. 저는 크게 이런 사람들을 세가지 유형으로 정리해 보고 싶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비전을 따라 자의적으로 이민을 간 사람들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먼저 나오면서 가장 흔하게 인용되는 아브라함의 예입니다. 유학을 포함해서 더 큰 어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쫓아오신 분들의 경우일 것입니다. 둘째는 자의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언약과 인도하심으로 타의적 이주의 과정을 겪었던, 그러면서도 중간기에 해당하는, 광야의 과정을 겪었던 모세와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예를 들 수 있습니다. 미국에 오신 분들 중에는 하나님께서 광야로 자신을 내몰았다고 고백하는 분들의 예가 여기에 속할 것입니다. 세번째 경우는 포로의 신분으로 쫓겨온 경우입니다. 다니엘, 학개, 스룹바벨의 경우입니다. 고국에서 파산을 하고, 혹은 차마 말할 수 없는 어떤 사정을 가지고 철저하게 고국을 등지고 떠나야만 했던 상황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어쩌면 미국이 마지막 도피처인 셈이지요.
어쩌면 위의 경우처럼 남자들의 예만 들었지만 사실은 여자들의 입장도 있을 것입니다. 룻이나 에스더 그리고 브리스길라 처럼 말입니다. 어떤 경우이든지 간에 우리는 어차피 이민자로서 낯선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어떤 유형의 이민자에 해당되는지를 깨닫고, 이미 나와 있는 그 유형의 성경적 원리를 잘 살펴본다면 우리는 우리의 이민생활을 잘 예측할 수 있을 것이며 이민자로서의 삶도 훨씬 수월해질 것입니다.